최병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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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에 따르면 한국 중·고생의 읽기 능력이 2006년도 1위에서 점차 떨어져 최근 조사인 2018년에는 37개국 중 6~11위로 평가됐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최근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에 ‘사흘’이란 단어가 1위에 올라 논란이 됐다. 중장년층이라면 당연히 알고 평상시 쓰는 말인데도 2030세대에서는 ‘사흘’이란 말의 의미를 검색해야 할 정도로 어휘력이 떨어졌다.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했던 1월에는 ‘음성 양성 뜻’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의 한자어를 모르는 젊은 층이 많은 탓이다.

순우리말인 ‘사흘’도 쓸 기회가 없고 한자인 ‘음성, 양성’을 배우지 않아 모르고 참 난감한 상황이다. 단적인 두 가지 사례만 가지고 요즘 젊은 층의 어휘력과 독해력이 떨어졌다고 속단하는 건 무리가 있지만, 2030세대가 SNS와 유튜브 등 영상에 익숙한 세대라 영상에 등장하는 단어나 말만 주로 접해 생기는 부작용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 책 속에 나오는 같은 뜻의 다양한 어휘를 배울 기회가 생기지만, 영상에서는 배우는 언어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 쓰기 습관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하는 건 길게 보면 대입 수능을 대비하는 길이다. 독해력, 어휘력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혀야 자기 것이 된다. 아이와 같이 도서관을 자주 다니며 문학이나 소설을 읽기 힘들어하면 학습만화를 통해서라도 책과 친해지게 하는 게 좋다. 필자는 초등학생 때 만화를 손에서 놓은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만화에 빠져 살았다. 문학 서적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만화를 통해 얻은 어휘나 독해력이 글을 쓰는데 큰 자양분이 됐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방법으로 읽는 습관을 먼저 들였다면, 다음으로 읽은 책을 자연스럽게 글로 정리해보도록 유도해 쓰기 능력을 길러주면 굳이 논술학원을 보내며 사교육비를 들일 필요가 없다. 하루 벌어진 일을 쓰는 일기 대신 독후감 일기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쓰게 하면 일기 쓰기 부담에서 벗어나 작문 실력을 기를 수 있다. 독해력은 한순간에 쉽게 길러지는 게 아니다. 무조건 좋다면 학원으로 해결하려는 부모의 태도가 오히려 아이를 글쓰기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중학생이 되면 학습 분량이 많아져 읽기, 쓰기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공부에 흥미를 잃는다. 대체로 언어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은 꾸준히 공부에 적응하지만, 어릴 적 독서가 부족했던 아이들은 공부를 따라가기 힘들어하고 기초학력 부진 학생으로 내몰린다. 내가 아는 단어, 어휘를 이해하고 암기하는 건 쉽지만 사흘이나 양성처럼 모르는 단어나 어휘는 암기해도 금세 잊는다. 공부를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공통점은 책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결국 자기 주도 학습능력이 떨어진다. 어릴 적부터 독서습관을 꾸준히 갖고 자란 학생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공부다.

공부의 기본인 독해력 없이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없다. 좋은 성적을 내려면 시험 문제의 지문을 읽고 글 속에 담긴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해 정보를 읽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초등학교 시절 단답형의 문제에서 좋은 성적을 내던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 성적이 떨어진다면 독해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해력은 국어에만 한정된 게 아니다. 사고력이 중요한 과목인 수학, 과학도 그 문장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뛰어나야 좋은 성적이 나온다. 무조건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책을 적게 읽더라도 핵심을 제대로 파악해서 읽고 글로 옮겨 요약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비로소 공부 능력으로 연결된다.

2019년도 수능 언어영역에서 ‘국제결제은행 산하의 바젤위원회가 결정한 BIS(자기자본비율) 규제’와 관련된 지문이 킬러 문항으로 작용해 많은 학생이 고배를 마셨다. 1교시 언어영역이 불수능이라 불릴 정도로 어렵게 출제되면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 문해력이 뛰어난 아이가 유리하게 된다. 언어영역을 망치면 다른 과목의 성적에 줄줄이 영향을 미치게 되니 좋은 성적을 거두기 힘들다. 실제 공부에서도 국어를 잘하는 학생이 수학, 과학을 잘하는 비율이 수학, 과학 잘하는 학생이 국어를 잘하는 비율보다 훨씬 높다. 아이가 공부 잘하기를 원한다면 어릴 적부터 책을 가까이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게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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