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약발이 다한 것 같다. 87세의 노구를 이끌고 평양에 갔으나 최고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주지 않았다. 아무리 개인 자격의 방문이라도 전직 국가 원수에 대한 이런 대접은 관례가 없다. 이는 카터 개인이나 카터가 대통령을 지낸 세계 슈퍼파워의 나라 미국에 망신을 안겨준 것이나 다름없다.

카터는 백화원초대소에서 이틀 밤을 먹고 자고 허탈하게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명목상의 국가원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장을 만나긴 했지만 그는 김정일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바지 사장에 불과하다.

김정일은 카터를 만나느냐 마느냐로 많은 계산을 했을 것이다. 김정일의 선택은 카터 일행을 그의 꼭두각시인 김영남이나 만나게 하고 한 이틀 잘 먹이고 재워 보내면 충분한 것으로 결정을 한 것 같다.

그런데 카터 일행을 태운 차량 행렬이 백화원초대소를 출발해 평양 순안공항으로 질주하고 있을 때 차를 되돌리라는 긴급한 호출이 떨어졌다. 명색이 전직 국가원수의 무게가 있는 사람인데 이렇게 아무렇게나 오라 가라 하는 것은 카터를 숫제 하찮은 사동(使童)취급하는 것이 다름이 없다. 말도 안 되는 무례다. 전할 것이 있으면 마땅히 뭔가를 전달하고픈 쪽에서 공항으로 달려와 전달해야 예우에 맞을 것이다.

일행은 차를 되돌렸다. ‘뭐 이런 일이 다 있나’하고 황당해 했을 것 같다. 정말이지 차를 되돌리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차를 되돌려야 하는 그때의 심사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그렇다고 아무런 소득 없이 어깨 죽지가 늘어져 떠나던 귀국길이어서 무례한 호출이 오히려 복음처럼 들렸을 수도 있다. 김정일이 이제라도 우리를 만나주려나 생각했을지 모른다. 카터 일행의 머릿속은 이 같은 기대 섞인 추측과 여러 상념들로 복잡하게 뒤엉켜 혼란했을 것이 틀림없다. ‘도대체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하는 궁금증에 가슴은 뛰었을 것 같다.

카터 일행이 백화원초대소에 다시 왔을 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북한 외무성 부상 이용호였다. 카터는 긴장된 마음으로 이용호의 입술만 바라봤을 것이다. 드디어 이용호가 입을 열었다. 이용호는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면서 봉투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김정일의 친서였다. 김정일이 만나자거나 만나기 위해 기다린다고 말할 것으로 내심 기대했다면 보나마나 실망이 컸을 것이다.

이용호는 임금의 칙서를 낭독하듯 봉투에서 꺼내든 김정일의 친서를 읽어 내려갔다. 내용은 이러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언제든지 만나 모든 주제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 또 “미국 등 6자 회담 관련국들과 핵문제를 포함해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전제조건 없이 언제든 협상에 나설 수 있다.”

노상 하던 얘기이며 간단한 내용이다. 그 말대로 김정일이 할 수도 있고 필요하면 언제든 뒤집어 버릴 수도 있는 내용이다. 카터는 이 친서봉투를 고이 받아들고 서울 공항을 통해 한국에 왔다. 그는 그가 묵고 갈 하얏트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를 발표했다.

우리 언론들은 카터가 전하는 말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고 상세하게 보도했다. 카터는 김정일의 친서만 공개한 것이 아니라 북한의 식량난에 대해 북한의 입장에서 설명했다. 그의 설명은 일방적이고 북한 편향 일변도였다. 마치 북한의 식량난이 한국과 미국이 식량 지원을 끊어 생겨난 것처럼 말함으로서 그들의 무력도발과 핵개발과 같은 원인 제공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북한의 인권 문제는 “밖에서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인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먹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인데 미국과 한국이 의도적으로 대북 식량 지원을 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인권을 짓밟고 있다고 뒤집어씌운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북한의 일방적인 궤변을 그대로 되풀이하며 대변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렇게 편향되게 처신하면 그는 해결사가 아니라 트러블 메이커(Trouble maker)다. 그의 그런 말은 어디에서도 먹히지 않는다. 더구나 직접 당사국인 한국이나 미국에서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 말이라면 그의 꼴은 참으로 우스워질 수밖에 없다.

그가 북한의 대변자가 되는 것은 자유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갖추고 북한 문제의 인과 관계를 정확히 알고 말해야 그 노릇도 욕 안 먹고 제대로 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북한에 간 김에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 대한 사과나 핵개발의 포기, 개혁개방, 남북 직접 교류와 접촉, 대화와 같은 그들이 당면한 난국을 풀 전향적인 자세를 가르쳐주고 설득하고 충고해주고 왔어야 한다.

그런데 그는 약발이 먹히지 않을 말만 가지고 돌아왔다. 북한에 억류돼있는 또 한 사람의 한국계 미국인이라도 구출해오나 싶었는데 그마저도 해내지 못했다.

2010년 8월에 그가 평양에 갔을 때는 비록 김정일은 만나지 못했지만 북한에 붙잡혀 있던 미국 시민 한 사람은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 그것으로 그는 다소나마 본국에서 그의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었다.

우리 언론은 북한을 홍보하는 카터의 말을 전하는 데 비싼 지면을 많이 할애했다. 김정일은 필시 우리 언론의 그런 속성을 너무 잘 알고 이용해왔다. 우리가 우리 언론을 통해 저들을 가르치고 넓은 세상으로 끌어내야 하는데 우리 언론은 거꾸로 먹히지도 않는 저들의 말을 전하고 전파하는데 바쁘다.

이를테면 우리가 군사훈련을 한다고 할 때 그 군사훈련의 배경과 당위성, 그 훈련을 하는 우리의 의지와 결의를 알리는 것보다 그 훈련에 반발하고 협박하는 저들의 반응을 더 비중 있게 다루는 경향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 그런 언론들이 우리에게는 많다. 참 이상한 언론이다.

카터는 체신에는 안 맞지만 참 충실한 김정일 왕가의 심부름꾼이다. 그렇지만 1994년 제1차 북 핵 위기로 인한 임박한 전쟁위험을 해결한 한 방이 지금은 그에게 없는 것 같다. 그때의 죽은 김일성과의 추억은 흘러간 과거일 뿐, 그 같은 추억을 만들 한계효용(限界效用)이 지금은 그에게서 다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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