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갑질.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반성 강요 시말서’ 헌법 위반

‘시말서 거부 징계’ 무효 판결

[천지일보=최빛나 기자] #1. 사소한 업무실수를 이유로 경위서를 쓰게 하는데, 제출하면 빨간펜으로 정정해 다시 써오게 합니다. 어떤 날은 온종일 업무도 하지 못하게 경위서를 계속 반려시킵니다.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라고 하며 자진 퇴사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자진퇴사를 하지 않겠다고 했더니, 앞으로 계속 시말서를 쓰게 하겠다고 합니다.

#2. 몸이 힘들어 잠시 쉬고 있는데 쉰다고 소리를 칩니다. 아무 일도 아닌데 시말서를 쓰라고 합니다. 간식 먹었다고 시말서를 쓰라고 하고, 머리를 묶었다고 시말서를 쓰라고 했습니다. 업무상의 일로 핸드폰을 사용했는데, 업무시간에 휴대폰 봤다고 시말서 쓰게 하면서 어떤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내용을 넣으라고 합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중대한 잘못이 아닌 사소한 실수로 시말서를 쓰게 만들고, 반복해 징계하거나 자진 퇴사를 유도하는 ‘시말서 갑질’이 횡행하고 있다”며 제보 받은 사례를 26일 공개했다.

지난 1월부터 9월까지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 중 시말서나 반성문을 강요한다는 시말서 갑질 제보는 143건이다.

직장갑질119는 “국립국어원이 국어 순화 자료집(2003년)을 발간해 시말서를 경위서로 순화해서 사용하라고 했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시말서는 위력을 떨치고 있다”며 “경위서에는 잘못했다는 반성의 의미가 담겨있지 않지만 시말서에는 ‘반성’이 담겨있고, 반복된 잘못은 그에 따른 징벌이 필요하다는 뜻이 내포돼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에 따르면 근로관계에서 발생한 사고 등에 관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사죄문 또는 반성문은 근로기준법 제96조제1항에 따라 효력이 없다. 또 그에 근거한 사용자의 시말서 제출명령은 업무상 정당한 명령으로 볼 수 없다.

또한 2010년 1월 14일 대법원 판결에서 근로자가 그와 같은 시말서의 제출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더라도 이를 징계사유나 징계양정의 가중사유로 삼을 수 없다고 봤다.

아울러 고용노동부도 직장 내 괴롭힘 매뉴얼에서 반성문 강요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명시하고 있다.

직장갑질119는 “회사에서 시말서를 강요한다면, 대법원 판결에 따라 시말서를 거부하면 된다”며 “실수나 잘못을 했고, 취업규칙 등에 경위서를 제출하도록 돼 있다면 육하원칙에 따라 건조하게 사실관계만을 써서 제출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위서라는 제목으로 사실관계를 쓰더라도 상사가 반성, 사과, 재발방지, 처벌 등의 단어를 강요한다면, 대법원 판례와 근로기준법에 따라 위법하기 때문에 거부할 수 있다”며 “경위서, 시말서를 이유로 괴롭힌다면 증거를 모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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