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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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로마에서 잠적한 조성길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가 2019년 한국에 입국한 것으로 이달 초 알려졌다. 대부분의 국내언론은 조성길의 대사대리 직명에 ‘대사’가 들어 있어 북한에서 상당한 고위층이라고 판단한 탓인지 톱뉴스로 보도했으며, 어떤 매체는 조성길이 한국으로 망명한 북한인사로서 1997년 망명한 황장엽(당시 북한 서열 13위) 이래 최고위급 인사라고 설명하면서 그의 망명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했다. 조성길 대사대리가 고위인사라고 보도한 것은 외교관의 대외직명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이다. 국제관례에 따라 외교관의 대외직명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조성길은 1등서기관인데 어떤 이유로 대사대리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됐을까? 2017년 9월 북한이 6차 핵 실험을 실시하자 이탈리아 정부는 문정남 당시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를 추방했다. 대사관에 대사가 부재하게 되면 대사관 내부 서열에 있어 차석(次席)인 직원이 일시적으로 대사의 직무를 대행하게 되는데 이를 대사대리(大使代理, chargé d'affaires ad interim)라고 한다. 대사대리를 지정하는 것은 그 직원의 대외직명(공관근무와 관련해 부여되는 직명으로서 공사, 참사관, 1등서기관 등)이나 계급하고는 관계가 없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조성길은 당초 대외직명이 3등서기관이었는데 문정남 대사의 추방 즈음 1등서기관으로 상향 재지정돼 대사대리의 직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차석이라 하더라도 너무 낮은 대외직명이면 무게가 떨어지는 만큼 1등서기관으로 재지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북한 대사관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고 일반적인 것이다. 조성길이 외교관 집안 출신으로서 북한에서 소위 금수저일 지는 모르겠으나 외교관 계급으로 보아서는 우리나라의 고참 사무관(5급) 수준이라 하겠다. 현직 북한 외교관으로서 한국으로 망명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 가운데 망명 당시 계급으로 보아 최고위 외교관은 태영호 주영국 북한 대사관 공사일 것이다. 과연 조성길 대사대리가 고위급 외교관인지와 관련해 어떤 전직 외교관이 외교관의 계급과 대외직명에 대해 설명한 데 대해 일부 언론이 잘못된 보도 내용을 바로잡지는 않고 ‘이런 주장도 있다’라고 했는데 답답한 노릇이다.

명칭이 대사대리와 유사한 것으로 대리대사(代理大使, chargé d'affaires en pied)가 있다. 이는 대개 두 나라 사이에서 외교관계의 수립 초기에 대사 교환에 대한 합의가 없는 경우 파견국의 외교장관이 접수국의 외교장관에게 보내는 신임장을 갖고 파견되는 정식 외교사절의 하나이다. 즉, 대리대사는 명실상부한 공관의 장(長)이다.

다음으로 외교관의 대외직명과 계급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대외직명을 서열 순으로 보면 대사, 공사, 공사참사관, 참사관, 1등서기관, 2등서기관 및 3등서기관이며, 영사 직렬의 경우 총영사, 부총영사, 영사, 부영사이다. 이러한 대외직명은 관리관(1급), 이사관(2급), 부이사관(3급), 서기관(4급), 사무관(5급) 등 각자 갖고 있는 계급 또는 직급과는 다른 것이다. 물론 어느 직원에 대한 대외직명은 그 직원의 직급을 고려해 부여된다. 예를 들어 사무관(5급)의 경우, 통상 2등서기관 또는 1등서기관의 대외직명이 부여된다. 그리고 어느 나라의 재외공관이든 모든 대외직명에 해당되는 외교관이 모두 다 있는 것은 아니며 공관 규모에 따라 다르다.

또 자주 접하는 실수로서 일반인들이 대사를 ‘대사관’ 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이는 대사관(大使館)의 館을 官으로 오해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해외여행자나 재외국민들이 우리 공관을 접촉하는 경우 상대가 대개 공관에서 영사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다 보니 대사를 제외한 공관 직원 모두를 영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역시 정확한 호칭은 아니다.

언론보도 등에서 자주 접하는 잘못된 호칭이 또 하나 있는데 예를 들어 주미국 대사를 ‘주(駐)’를 빼고 그냥 미국 대사라고 하는 것이다. 미국 대사는 미국 정부가 외국에 파견한 대사를 뜻한다. 즉, 미국 대사는 미국의 외교관이지 한국의 외교관이 아니다. 주한 미국 대사를 줄여서 미국 대사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한국 정부가 미국에 보낸 아무개 주미국 대사를 미국 대사로 부르면 아무개를 미국의 대사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단어 사용이 정확해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며 언론은 더욱 그래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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