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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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는 세계 어느 국가보다 기록을 중시한 나라였다. 수많은 전란 속에서도 관공서 문서나 사문서를 지키려는 노력은 눈물겨웠다. 이렇게 현존하는 각종 문서들은 사료로서 당시를 증거하고 때로는 역사 연구의 기초가 되고 있다.

개인이 쓴 일기를 가리켜 일사(日史)라고 한다. 일사는 관찬 사료를 보충하는 중요한 사문서로 평가받고 있다. 임진전쟁 중에 쓰여진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류성룡의 징비록, 김성일의 용사일기(龍蛇日記)등은 후손들과 제자들의 노력으로 지켜진 귀중사료다.

조선 시대에는 문서를 인멸하거나 위조하는 행위에 대해 중벌로 다스렸다. 그만큼 문서를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관인을 위조한 자에게는 사형, 사사로이 관용문서를 위, 변조하거나 멸실시킨 자도 중죄로 다스렸다.

조선 성종 16년(1485AD) 반포된 경국대전 4차 개수 편에는 ‘문서를 위, 변조, 멸실시킨 자는 모두 영구히 서용하지 않는다’고 했으며 법헌촬요(法憲撮要) 숙종 29년(1703)기록을 보면 ‘관인 위조는 모두 사형으로 결단 한다’고 돼 있다.

조선시대 상위 법전인 대명률에도 문서의 증멸(增滅)에 관해서는 참형(斬刑)으로 다루도록 돼 있다. 참형이라면 목을 베는 극형이 아닌가.

임진전쟁 당시 춘추관 사관들은 사초들을 모두 불태우고 산속으로 숨었다. 이때 춘추관일기(春秋館日記),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각사등록(各司謄錄)이 불태워졌다. 사초가 일본군 수중에 들어가면 국가의 기밀이 모두 밝혀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나고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사초가 모두 없어져 실록을 편찬하지 못했다. 선조를 측근에서 모셨던 백사 이항복이 총재관이 돼 실록편찬을 주도했는데 어려움이 컸다. 일일이 날짜를 상고해 조정의 중요한 일을 적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당시 사관이었던 관리들은 참형은 면했지만 조정으로부터 미움을 받았으며 서용되지 못하고 찬밥을 먹어야 했다. 두고두고 손가락질 받는 신세가 됐다.

이번에 밝혀진 감사원의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 보고서를 보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사건이 발생했다. 원전 가동중지 결정 과정을 숨기려고 산자부 공무원들이 수 백 건의 관련 서류를 파기한 것이다.

그러나 처벌은 솜방망이였으며 하위직들만 고발된 상태다. 산자부 전 장관에 대해서는 “비위 행위가 국가공무원법 제56조에 위배된 것으로 엄중한 인사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 교수로 재직 중이기 때문에 인사자료로 활용하라는 정도의 통보 조치만 했다. 한수원 사장에게는 직원 관리감독을 지적 ‘주의 요구’를 했다.

조기폐쇄 추진방안을 요구한 청와대 비서관에 대해선 면죄부를 줬다. 월성 1호기 관련 자료를 무단 삭제한 산자부 공무원 2명만 징계요구를 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어느 누구 지시로 관련 서류를 파기하고 은폐했는지 철저하게 규명돼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이번 문서파기도 권부의 실책을 덮기 위한 음모에서 출발했다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월성1호기 조기 폐쇄가 결정됐다. 전문가들의 고언은 무시됐으며 청와대나 산자부 장, 차관 누구 하나 올바른 소리를 해 주는 이들이 없었다. 결국 국가와 국민들에게 엄청난 손실과 원자력 관련 학생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겼다.

국가백년대계를 좌우할 시책이 권부의 말 한마디에 좌우되는 나라는 독재국가밖에 없다.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탈원전 정책은 전면 수정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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