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 이야기7-서울] “2명의 임금을 모실 수 없다”… 목숨 바쳐 충절 지킨 사육신 (3)
[지역사 이야기7-서울] “2명의 임금을 모실 수 없다”… 목숨 바쳐 충절 지킨 사육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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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역 곳곳의 역사를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흔하게 역사 교과서 등에서 볼 수 있는 주제가 아닌,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지역을 지켜줬던 과거의 흔적들을 찾아보는 시간이 됩니다. 이 글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알고 이곳에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음을 다시금 감사하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서울시 동작구 사육신 공원에 있는 의절사에는 7개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서울시 동작구 사육신 공원에 있는 의절사에는 7개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 논란의 사육신 공원

“수양대군이 불러온 피바람
그렇지만 세조의 피바람 뒤에
우리는 ‘의(義)’를 알았다.
사육신이 죽지 않았던들
우리가 ‘의’를 알았겠는가.
이것도 고난의 뜻이지 않을까.
고난 뒤에는 배울 것이 있다.”

-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역사>

사육신 공원은 노량진역에서 1번 출구로 나와 공무원 입시생들이 다니는 학원 숲을 지나면 나온다. 조금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과 그 뒤편으로 묘가 있다. 또 조금 더 올라가면 사육신 역사관을 만날 수 있다. 사육신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사당에 들어가면 위패가 7개가 나온다. 묘 또한 7기로 조성되어 있다. 여태 우리는 사육신을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 6명으로 알고 있었지만 사칠신이었다는 말일까.

위패를 나란히 보면 낯익은 듯 낯선 인물의 위패가 보인다. 이름은 김문기. 그는 누구일까. 김문기는 세종대에 예문관검열, 병조참의 등을 거쳐 1453(단종 1)년에 형조참판에 올랐던 인물로 단종 복위 운동에도 함께했다. 단종 복위 운동이 발각되어 군기감 앞에서 처형된 김문기였지만 남효온이 쓴 <추강집>에 사육신의 명단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1731(영조 7)년에 복관됐고 정조 때 편정한 <어정배식록>에 삼중신(三重臣)으로 민신, 조극관과 함께 명단에 올랐다. 앞서 말했던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 6명은 <추강집>의 기록대로 ‘사육신’으로 기록됐다. 그렇다면 ‘삼중신’ 중 하나인 김문기는 왜 사육신 묘에 함께 있게 된 것일까.

사육신 공원이 조성되던 1977년의 기록을 봐야한다. 당시 서울시는 사육신 공원을 재정비 하면서 묘역에 없던 하위지와 유성원의 묘를 새로 만들어 모시려 했다. 그러자 김문기의 집안인 김녕 김씨 종친회가 “사육신에는 유응부 대신 김문기가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이에 서울시는 문교부를 통해 국사편찬위원회에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의뢰하자 국사편찬위원회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했고 “김문기를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현창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결정했다.

서울시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이 결정에 따라 사육신 묘역에 김문기의 가묘를 추가로 설치했다. 다만 유응부의 묘도 그대로 두었다. 결국 이러한 결정은 사육신 논쟁이 됐다. 유응부의 천녕 유씨 종친회와 ㈔사육신현창회 모두 반발했다. 그러자 국사편찬위원회는 결국 1982년 “종래 사육신을 변경한 적이 없다”고 다시 말했다.

분명 정조 때 <어정배식록>에서 사육신과 삼중신을 구분했음에도 이런 논란이 발생했다. 우리가 생각할 것은 사육신 공원에 위패와 묘를 모신다고 해서 충신이고, 뺀다고 해서 충신이 아닌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당시 사육신과 삼중신 모두 2명의 임금을 모실 수 없다는 신념 아래 목숨을 바친 충절을 지킨 충신들이었다. 이 충신들의 충절을 우리가 감히 더하다, 덜하다 논할 수 있는 문제인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노량진은 나라의 일을 하기 위해 준비 중인 공시생들이 모인 곳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공시생들이 휴식을 하기 위해 사육신 공원에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위로 올라가면 탁 트인 한강을 볼 수 있고 공원 조성도 잘 해놨기 때문이다. 불꽃 축제 때 명소로 꼽히기도 한다.

그렇다면 공원을 찾는 이들이 바라볼 때 사육신의 충절을 흐리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공원을 예쁘게만 조성할 것이 아니라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지키는 것도 공원 조성의 일부분이라 할 것이다. 더 이상 그들의 충절이 퇴색되지 않도록 올바른 역사 전달은 분명히 필요하다.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서울시 동작구 사육신 공원에 있는 김문기의 가묘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서울시 동작구 사육신 공원에 있는 김문기의 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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