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왕필(王弼 226~249)은 중국철학사상 가장 강력한 시대적 소리를 연주했다. 유성처럼 갑자기 지나갔지만, 23년의 생애에 불가사의한 천재적 지혜를 빛냈다. 한 시대를 밝게 비추며, 위진현학의 이론적 항로를 밝혔다. 왕필이 주를 단 주역은 지금까지도 중요한 지위와 영향력을 유지한다. 왕필역주는 도가역의 대표이다. 상수학을 일소하고, 사변적 철학으로 수준이 높은 주석을 단 걸작이다. 역경 상하편, 문언(文言), 단전(彖傳), 상전(象傳)에는 주석을 달았지만, 계사(繫辭), 설괘(說卦), 잡괘(雜卦)에는 달지 않았다. 나중에 동진의 한강백(韓康伯)이 완성했다.

왕필은 사물의 본체인 도를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성인의 치세지도도 인식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우주의 본체인 도는 형체도 이름도 없으므로 궁(宮)음도 상(商)음도 내지 않고, 따뜻하지도 서늘하지도 않다. 성인의 치세는 체도(體道)의 결과이므로, 한 쪽으로 기울거나 집착하지 않는 자연무위이다. 도는 말과 형상이 불가능하고, 이름을 붙일 수도 없지만, 만물에 내재돼 있다. 무형무위로 만물을 만든다. 정치상으로는 근본을 중시하고 말단을 경시하는 숭본식말(崇本息末)을 제시해 자연규율인 도를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운용할 것을 주장했다. 왕필의 인식론이 집중적으로 표현된 것은 주역이다.

그는 의(意), 상(象), 언(言)이라는 3가지 개념의 관계를 설명했다. 언은 괘사와 효사에 대한 해석이다. 상은 괘상(卦象)이다. 의는 괘상이 나타내는 사상, 즉 의리(義理)이다. 그는 이 3가지를 진보적으로 지적했다. 언을 거쳐야 상을 인식할 수 있고, 상을 거쳐야 의를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명백한 의는 상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명백한 괘상은 말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언에 집착하면 상에 이를 수 없다. 어떤 언도 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적인 언을 설명하는 것이다. 상에 집착하면, 의에 이를 수 없다. 어떤 상도 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의적인 상을 설명한다. 언에 집착하지 않아야 상을 얻고, 상에 집착하지 않아야 의를 얻는다. 왕필은 언이 상에서 나왔으니 상을 설명하고, 상이 의에서 나왔으므로 의를 설명한다는 것이다. 의를 얻으려면 반드시 언과 상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언과 상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언과 상에 집착하면 의를 얻지 못한다. 성인의 도는 무위자연적인 치세의 도이다.

왕필의 조부 왕찬(王粲)은 형주목 유표(劉表)의 사위였다. 유명한 학자 채옹에게 6천여권의 책을 얻었다. 나중에 자기가 모은 것과 합해 1만여권의 장서가가 됐다. 소년 왕필이 군서박람한 배경이다. 왕필은 성격이 합리적이고, 온갖 놀이와 음악을 즐겼다. 그러나 천재답게 오만해 걸핏하면 남을 비웃었으므로 대부분의 사대부들이 꺼렸다. 그러나 종회(鍾會)와는 친했다. 종회는 그를 가늠해보려다가 높은 수준을 확인하고 감탄했다. 처음에는 왕려(王黎), 순융(荀融)과 친했다. 나중에 왕려가 황문시랑으로 기용되자, 그를 비난하다가 순융과도 틀어졌다. 죽은 후에는 실권자 사마사(司馬師)까지도 아까워했다. 하안(何晏)은 왕필이 공자가 후생가외(後生可畏)라고 말한 사람으로 하늘과 사람 사이를 논할 자격이 있다고 감탄했다.

칭찬일색만은 아니다. 손성(孫盛)의 비판이다. 주역은 사물의 정밀한 이치를 전개한 책이므로 천하의 지극한 정기를 타고나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세상의 주해는 모두 망언이다. 왕필은 아무 말이나 끌어들여 오묘한 것처럼 과장하고, 공허하고 화려한 말로 눈을 어지럽힌다. 음양과 6효의 변화에 따른 상(象)의 의미와 시간과 오운육기의 관계는 대부분 누락시켰다. 사람들이 대도(大道)로 착각할까 걱정이다. 하소(何劭)는 타고난 왕필의 재주는 빼앗을 수 없지만, 천박하고 물정을 모르는 풋내기에 불과하며, 도를 논하며 늘어놓은 말들은 하안보다 못하다고 저평가했다. 그러나 현학의 대가답게 그의 득의망상적 사고는 중국 고대의 시가, 회화, 서법 등의 예술이론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천재를 보는 눈은 천재라야 정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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