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부지의 탱크에 보관 중인 방사성물질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는 방침을 굳혔다. 이르면 이달 중 스가 정부의 각료회의에서 최종 결정될 것이라는 소식이다. 일본 입장에서는 가장 저렴하면서도 동시에 원전사고의 후유증까지 털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결국 바다 방류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변국에 미치는 영향은 한마디로 ‘재앙’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원전 오염수가 조류를 타고 제주도 인근까지는 6개월, 동해까지는 일 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은 가장 먼저 그리고 최대의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정화시설(다핵종제거설비: ALPS)을 통해 처리된 오염수는 ‘안전하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심지어 취임 후 첫 행선지로 후쿠시마 원전사고 현장에 달려간 스가 총리는 원전 관계자들이 ‘정화수’라며 건넨 병을 들고 ‘이 물을 마셔도 되느냐’는 식으로 여론까지 호도했다. 그러나 오염수의 안전성은 여전히 논란 중이다. 정화시설로 걸러낸다고 하더라도 발암물질인 삼중수소(트리튬)는 제거할 수 없다. 이는 일본 정부도 인정하고 있다. 게다가 세슘과 스트론튬 등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성물질을 기준치 이하로 낮추는 일도 간단치 않다. 실제로 2018년 일본 정부의 조사에서도 정화한 오염수 80%에서 기준치 이상의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다. 일본 정부를 믿을 수 없는 근거인 셈이다.

최근 일본 도쿄전력은 오염수 바다 방류를 실행하기 위해 새로운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지난 15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오염수 1000톤을 정화시설로 2차 처리했더니 주요 방사성물질이 기준치 이하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자료는 공개하지 않았다. 당초 62개의 방사성물질을 모두 제거하겠다고 밝힌 이상, 그 중에서 어떤 물질이 얼마만큼 기준치 이하로 떨어졌는지 구체적인 자료를 공개해야 최소한의 신뢰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없었다. 게다가 표본으로 삼은 오염수는 기껏해야 1000톤이다. 전체 122만톤 가운데 0.1%에도 미치지 못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그들만의 잣대로 판단하고, 일방적으로 바다 방류를 밀어붙인다면 이는 국제사회를 향한 ‘만행’에 다름 아니다.

일본 정부는 자신들이 밝힌 자료가 정말 믿을 수 있다면, 국제사회에 전문가들의 조사를 요청하는 것이 수순이다. 그리고 설사 지금은 안전하다고 결론이 나더라도 향후 관리 과정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수없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해수 방류를 엄격하게 관리할 주체에 대해서도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물론 관리에는 상당한 비용이 필요하다. 그 비용이 부담된다면 국제사회에 공동관리를 요청할 수도 있다. 국제사회도 환영할 것이다. 원전 오염수 바다 방류는 비단 일본 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태도는 너무도 소극적이고 일방적이다. 주변국들이 어떤 피해를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큰 고민이 없어 보인다. 심지어 일본 내에서도 어민들은 물론 시민단체, 학계 등에서 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스가 정부는 귀를 막고 있다. 국제사회와 함께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의지도 없다. 그렇다고 신뢰성 있는 자료를 내놓는 것도 아니다. 이는 단순한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일본 스가 정부도 자신감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실 그것이 더 두렵다. 자칫 인류의 재앙이 될 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을 이렇게 쉬쉬하면서 처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쯤 되면 무책임도 그 정도가 지나쳤다. 인류를 향한 새로운 형태의 ‘만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그린피스를 비롯한 국제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바다 방류가 아니라 오염수를 보관할 탱크 시설의 부지를 추가로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해서 바다에 방류한다면 앞으로 제2, 제3의 원전 오염수 바다 방류를 막을 방법이 없다. 원전을 가동하는 여러 나라들이 ‘고비용’ 때문에 보관 시설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앞 다퉈 바다에 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본이 그런 악순환의 선례가 돼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옳다. 이달 안으로 결정이 난다면 시간도 별로 없다. 아니 늦어도 너무 늦었다. 바다 방류를 지켜본 뒤에 행동에 나서면 소용이 없다. 따라서 우선 일본 정부의 바다 방류 계획을 철회토록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은 “모든 국가는 해양 환경을 보호하고 보전할 의무를 진다(192조)”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국제적인 약속이다. 그 약속에 위배된다면 유엔의 유일한 사법기관인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물론 거기서 어떤 해법을 찾기는 어렵다. 당장은 좀 더 시간을 벌자는 의미가 크다.

시간을 좀 더 확보한 뒤에는 무엇보다 국제사회와 연대해서 원전 오염수 처리 문제를 국제 이슈로 공론화시키는 작업이 중요하다. 일본 스가 정부의 양심에만 맡길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가장 큰 피해가 우려되는 한국 정부가 앞장서는 것은 모양새도 좋다. 게다가 ‘그린뉴딜’을 앞장서 국책사업으로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라면 더 힘을 받을 수도 있다. 필요하다면 국제사회와 함께 공동조사, 공동기금 그리고 공동관리도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원전 오염수 바다 방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인류에게 어떤 재앙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원전 강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참에 원전 수출을 넘어서 그 문제점까지 해법을 찾는 데 앞장서는 ‘진짜 원전 강국’으로 재평가될 수도 있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하루빨리 인식하고 말로만이 아니라 직접 행동에 나서길 촉구한다. 정말 시간이 없다는 것이 더 안타까울 따름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