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훤 행복플러스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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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잘 관찰해보면 기분이 가장 안 좋을 때는 자신이 옹졸하다고 느껴질 때다. 반대로 자신의 관대함을 발견했을 때 기분이 좋고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칼릴 지브란은 ‘관대함은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주는 것이고, 자부심은 필요한 것보다 적게 취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항상 관대하고 자부심을 갖고 살면 좋겠지만 그것은 쉽지 않다. 그렇더라도 꾸준히 그 방향으로 노력하는 것이 우리가 가져야할 삶의 가장 좋은 태도이다.

정말 자부심이 필요했던 시절,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자면 평소에 음식을 남기지 않도록 교육을 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웃집이랑 같이 n분의 1로 식사를 하게 됐을 때 일이다. 유치원 졸업식이었나 그랬던 것 같다. 자장면이나 볶음밥을 인원수만큼 시키고 탕수육도 주문했다. 아이들이 남기면 혼나니까 거의 식사 끝날 때까지 자기 자장면만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었는데 그 때는 속이 많이 상했던 기억이 난다. 탕수육 먹을 기회가 자주 있는 게 아니니까. 정말 옹졸하기 그지없다. 물론 그런 시기를 거치며 다듬어 온 지금의 모습은 그렇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반대로 관대함이 느껴지는 행동도 예를 들어 보겠다. 가끔 일식집 등에 가면 팁을 주게 되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은 보통 미리 줘야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대가를 바라고 주는 것은 뇌물에 가깝다. 다 대접받고 감사함의 표시로 주는 것이 순수한 감사함의 표현이고, 관대함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책에 소개된 일화인데 감동적이어서 옮겨 보려고 한다.

한 아이가 아이스크림가게에 들어왔다. 아이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은 얼마에요?”라고 물었다. “25센트란다.” 아이는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서 세어보더니 다시 물었다. “그럼 셔벗아이스크림은 얼마에요?” “20센트, 무엇으로 줄까?.” 아이는 다시 동전을 세어서 확인하더니 셔벗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아이스크림과 계산서를 받자 아이는 동전을 모두 탁자에 올려놓은 채 가게를 나갔다. 점원이 동전을 확인했을 때 탁자에는 25센트가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그 아이는 점원에게 5센트의 팁을 주기 위해서 소프트아이스크림을 포기하고 셔벗아이스크림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문화가 다르니 팁을 주고 안 주고의 문제가 아니라 관대함을 갖느냐 못 갖느냐의 문제다. 관대함이란 신뢰, 시간, 관심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줄 수 있는 것을 계산하지 않고 줄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꼭 개인이거나 사람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대중이어도 상관없고 식물이나 환경이어도 상관이 없다. 더 줄 수 있는 것이 있는 사람은 관대하다고 말할 수 있고, 적게 취해도 화가 나지 않는다면 자부심이 있는 것이다.

관대함이나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때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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