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포커스] 25년 이어온 국보 1호 재지정 논의… 혜문 “훈민정음, 1호로 지정돼야”

[천지일보=이대경 기자] 매년 한글날을 전후로 우리 사회에서는 국보 1호를 숭례문에서 훈민정음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국보 1호를 변경한다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훈민정음 국보 1호 지정 운동에 앞장서 왔던 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과 함께 훈민정음해례본 국보 1호 지정에 관한 청원을 국회에 접수했다.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 대표는 천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목조 건물인 숭례문은 2008년 화재 이후 부실 복원 공사로 인해 국보 1호로서의 가치가 줄어들었다고 본다”며 “대신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를 받는 훈민정음해례본을 1호로 지정해야 한다”고 청원 접수 배경을 밝혔다.

국보 1호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는 1995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주로 일제가 문화재에 지정한 순번을 그대로 지정했다는 이유와 국보 1호로 상징성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 숭례문은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가 ‘조선 보물 고적 명승천연기념물 보존령’을 시행하면서 보물 제1호로 지정했다. 이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왜병이 숭례문을 통해 조선의 도성에 첫 입성을 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해방 이후 한국 정부는 1962년 문화재보호법을 시행하면서 숭례문을 국보 제1호로 승격했다. 다만 지난 2008년 숭례문이 화재로 불타고 전통 방식으로 복원을 진행했지만, 부실하게 복원을 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재지정에 대한 의견은 거세졌다.

혜문 대표는 문화재 찾기 운동을 의병 활동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문화재 찾기 운동이 의병 운동이라는 말은 본의는 진짜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을 고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혜문 대표는 “무능하면서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새로운 시대를 막고 있는 상징으로 숭례문을 설정했다”며 “제도에 의해 고쳐지지 않으니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시민운동의 형태로 부당하게 자리 차지하고 있는 1번을 무너뜨리는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국보 1호 재지정 논의는 김영삼‧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활발한 논의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국보 1호 재지정 논의는 무산됐다.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을 국보 1호로 바꿀지 결정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문화재 지정번호는 가치 서열에 따라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관리주민등록번호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관리번호이기 때문이다.

다만 국보 1호가 가지는 상징성을 무시하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국보 제70호 훈민정음해례본이다. 이와 관련 지난 2005년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새로운 국보 1호로는 훈민정음이 적합하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문화재청은 국가 지정번호 자체를 폐지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하지만 사회·경제적인 비용은 물론 교과서·백과사전·표지판 교체 등에 들어갈 크고 작은 경비가 최대 450억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추산이 나와 기획재정부에서 반대 의견을 내비쳤다.

아울러 국보 제78호와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처럼 문화재 등록번호는 다르지만 이름이 같아 혼선이 발생할 우려도 있어 결국 지난 2015년 백지화됐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혜문 대표는 “대통령들이 나서서 직접 지시했지만 결국 정부 안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해 무산된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운동을 지속했고 많은 성과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훈민정음 국보 1호 지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단순한 관리 번호에 불과한데 왜 그러느냐’는 정도의 수준”이라며 “반대자들의 논리는 탄탄하지 않고 단순히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정번호제 폐지에 대해 혜문 대표는 “좋은 방안이기는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결국 폐지됐다”며 “제일 좋은 방법은 문화재청에서 바꾸면 되지만, 만장일치제로 운영되는 문화재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어 국회 청원을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혜문 대표가 이러한 청원을 국회에 제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대 국회에서 고(故) 노회찬 정의당 전 의원과 함께 동일 청원을 제출했지만, 노 전 의원이 사망하면서 청원 상정조차 진행하지 못했다.

이후 21대 국회에서 민주당 전용기 의원과 함께 같은 청원을 국회에 제출했다. 혜문 대표는 “20대 국회에서 검토 자료와 사실관계를 따져 제출했기 때문에 이번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문화재청은 문화재와 관련한 문제는 자신들이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며 “하지만 국보 1호는 국가의 위상과 관련이 있고 정치와 외교의 문제라고 보기 때문에 국회에서 결정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배익기씨가 보관하고 있는 훈민정음해례본에 대한 논란에 대해 혜문 대표는 “문화재청이 협상을 해야 하는데 압박만 하는 상황이기에 태도 변화가 없는 한 내놓지 않으리라고 본다”며 “문화재청이 몸을 낮춰 배씨의 의견을 수렴하며 협상에 나서야 해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지막으로 혜문 대표는 “우리나라의 국새를 보면 봉황 두 마리가 있는데 역사상 국가의 인장이 머리가 두 개인 경우는 없었다. 우리 사회가 이원론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라며 “음양의 조화를 위해서 그렇게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부적절하다고 본다. 때가 되면 이 의제를 공론화할 것”이라고 추후 계획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