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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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법세련)’라는 시민단체가 있다. 이름에서 보듯 민주․법치주의 국가에서 법치를 바로 세우자는 것이니 그 목적이 정도(正道)라 아니할 수 없다. 단체의 성향을 보자면 보수 쪽인데, 하는 일에서 정부․여당인사만 골라서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심지어 고발까지 하고 있으니 진보 쪽에서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지켜보는 중이다. 그럼에도 법세련은 아랑곳없이 묵묵히 사회의 정의실현을 위해 목하 과업 이행 중인바 최근 고발과 검찰에 수사의뢰한 실적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많은 정부 인사들을 고발했지만 피고발 대상자 중 단연 선두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다. 추 장관이 장관 후보자 시절인 지난해 12월경 딸의 차용증 위조 의혹으로 후보자를 고발했고, 올해 9월 3일에는 추 장관 아들 서씨의 휴가 특혜와 관련해 대검찰청에 “군 의혹을 밝혀달라”고 수사의뢰했는가 하면, 서씨가 전북 현대축구팀의 인턴채용과 관련해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또 14일에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추 장관을 국회증언감정법 위반 위증죄 및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로 형사고발한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아들과 관련해 추 장관이 자신의 보좌관에게 ‘군부대에 연락하라고 지시한 적 없다’는 취지 발언이 위증이라는 주장이다. 지난 9월 초 열렸던 국회 예산결산특위 전체회의에서 야당 의원이 “보좌관이 전화했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맞느냐”고 묻자 “그런 사실이 있지 않고요”라고 답했고 거듭되는 의원 질문에도 “그런 사실은 없다”며 자신이 지시하지 않았음을 몇 차례나 강하게 부인했던 것이다.

하지만 추 장관이 더불어민주당 대표시절 아들 휴가문제와 관련해 2017년 당시 보좌관에게 군부대 지원장교 전화번호를 넘기면서 나눈 문자에서는 지시 내용이 나오고 있다. 보좌관이 “지원장교에게 예후를 좀 더 봐야 해서 한번 더 연장해달라고 요청해 놓은 상황입니다. 예외적 상황이라 내부 검토 후 연락주기로 했습니다”는 메시지가 앞서 국회에서의 답변과 다르니 법세련에서 이 내용을 문제 삼아 위증했다는 혐의로 고발한 것이다.

그러한 고발 전례에서 며칠 전에는 또다시 고발 건수가 하나 더 늘었다. 추 장관이 자택 앞에서 취재하려고 기다리고 있던 기자 사진을 찍어 공개한 데 대해 법세련에서는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것이다. 추 장관은 지난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그 내용을 보면 “오늘 아침 아파트 현관 앞에 OOO 기자가 카메라를 들고 나타났다”며 기자의 사진 두 장을 찍어 페이스북에 게재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미 한 달 전쯤 법무부 대변인은 ‘아파트 앞은 사생활 영역이니 촬영제한을 협조바란다’는 공문을 각 언론사에 보냈다. 그런데 기자는 그런 것은 모른다고 계속 뻗치기를 하겠다고 한다”며 이것은 출근을 방해하는 것이므로 이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집에서 대기하며 일을 봐야겠다는 것을 말하기도 했던 추 장관이다.

여기에서 법적 문제가 되는 것은 “사생활을 침해당했다”는 추 장관 당사자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 사진기자가 추 장관의 아파트 입구 앞에서 대기한 것은 법에 저촉되지 아니하고 정당한 행위이다. 요즘 지속적으로 사회여론을 타고 있는 추 장관에 대한 취재는 목적이 명백할 뿐만 아니라 대기장소 또한 사적 장소가 아닌 아파트 입구 앞이라는 공공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법성은 오히려 추 장관이 사진을 찍어 SNS상에 올린 기자의 얼굴에 있다. 두 장의 희미한 얼굴 사진으로는 누구인가가 특정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자의 신장, 옷차림, 카메라 등을 보면 언론사에서는 그 기자가 누구인지 드러나고 있으니 명예훼손을 범한 초상권(肖像權)이다.

사실 우리법제상 초상권을 인정하는 명문규정은 없지만 법원조직법과 소년법 등에서 간접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더불어 대부분의 학설들은 헌법 제10조(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및 제17조(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의 규정을 들어 초상권을 인정하고 있는바, 그렇다면 추 장관의 사진기자에 대한 초상권 침해행위가 정당성을 가지는 것도 아닌 것이다. 초상권 침해가 정당화되려면 ‘중대한 범죄로 사회적 연관성이 큰 사안이어서 공공에게 알릴 필요성이 큰 경우’ 등이어야 하는데 사진기자가 공공장소에서 취재 목적으로 있는 것은 범죄 자체가 구성되지 않는다.

법세연이 사진기자가 추 장관으로부터 당한 ‘초상권 침해’ 위법성을 검찰에 고발한 것은 법을 지켜야할 법무부 장관에 대한 엄중 경고일 것이다. 공인(公人)이 언론의 정당한 취재를 왜곡하게 할 목적으로 SNS상에 사진을 올리고 초상권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면서 자신이 사생활 침범 당하고 있다는 말은 적반하장인 셈이다. 이는 목격자인 언론을 무시하는 태도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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