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not caption

서울대 경제학부 주병기 교수가 만든 ‘개천용 기회 불평등지수’는 소득 하위 20%인 부모를 둔 사람이 소득 상위 20%에 올라설 확률을 구한 뒤 1에서 빼는 방식으로 산출한다. 이 수치가 높을수록 기회 불평등의 정도가 크다는 것을 나타내는 지수다. 1990년 19.79였던 ‘개천용지수’는 2016년 34.82로 나타나 하위 20% 출신 100명 중 34.82명이 기회 불평등으로 상위 20%에 오르지 못했다는 의미로 30여년 만에 두 배가 됐다. 저소득층이 부자가 될 확률로만 치면 맞는 이론이지만, 학업 성취도나 전문직업을 갖는 성취 면에서는 허점이 많다.

프랑스 학자 부르디외는 ‘문화적 자본이라고 하는 언어, 가치, 문화와 유물을 가진 지배계급이 그 자본을 유리한 직업적 지위를 얻기 위해 사용한다. 반대로 노동자 계급은 이러한 문화적 자본의 부족으로 교육적, 직업적 명예를 위한 경쟁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인다’라고 했다. 즉 경제적으로 여유를 가진 상류층은 하류층에 비해 누릴 수 있는 문화적 자본이 많아 경쟁에서 훨씬 유리하다는 말이다. 단순히 부모의 경제력이 아이들에게 많은 문화적 자본을 누리게 해 상류층에 오른다고 분석하는 건 잘못이다. 현재 상류층 부모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어떤 유전자를 가졌는지 간과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20년 전 강남의 한 중학교에 근무할 당시 부모의 학력을 보면 80%가 명문대 졸업 후 전문직이나 대기업에 근무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머지 20%는 강남에서 자영업이나 사업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로 대부분 학력이 고졸 이하였다. 불평등지수 이론대로라면 20%의 자영업이나 사업으로 부를 이룬 사람들도 상위 20%에 해당하고, 이들도 경제력을 바탕으로 어떤 문화적 자본이라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자녀의 학업 성취도만 보면 대졸자 부모를 둔 아이들이 상위권을 휩쓸고, 20% 고졸자 부모의 자녀는 대부분 하위권이다. 물론 두 부류 모두 경제력의 대물림으로 경제력은 상류층이 됐으리라 예상한다.

60~70년대 개천에서 용이 나던 일은 대부분 가난을 달고 태어난 세대라 부모의 학력과 경제력의 인과관계가 부족해 가능했다. 이 시대 가난한 부모 밑에서 머리가 좋은 아이들이 노력해 개천에서 용이 된 지금 시대는 그 부모의 경제력과 유전자를 대물림한 아이들이 용이 될 확률이 높다. 현재 저소득층으로 사는 필자 또래의 부모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저소득층으로 전락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학창 시절 노력이 부족했던 부류가 많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자신의 노력만으로 용이 된 부모의 유전자와 성실성을 물려받은 자녀의 성취도가 높은 걸 마치 사회의 불평등으로만 해석해선 안 된다. 부모가 집에서 공부하고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와 반대로 게임만 하고 노는 부모를 보고 자란 아이의 성취도가 차이 나는 게 당연하다.

문화적 자본의 차이는 저학력의 저소득층 부모가 제공하는 환경과 고학력의 고소득층 부모가 제공하는 환경의 차이도 된다. 두 집안 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와 지식의 양이 현저하게 차이가 나고 이는 좋은 대학 진학, 좋은 직업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게 단순히 고소득층이라서 모든 걸 독점하는 사회 불평등으로 비난하는 건 옳지 않다. 문화적 자본이 아무리 풍부해도 본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런 성실성, 노력하는 자세도 대물림되는 게 문제다. 경제력만 좋다고 좋은 성과를 거두는 게 아니라 부모의 훌륭한 코치와 유전자가 결합하며 시너지를 발휘한 결과다.

어릴 때는 어느 집 아이나 탐구욕은 비슷하다. 그때 부모의 양육 태도나 답변 수준 즉 부모가 사용하는 언어와 지식이 달라지면서 점차 아이들끼리 격차가 생기게 된다. 고학력, 고소득의 부모는 자녀에게 더 많은 정보를 쉽고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다. 저학력 고소득의 부모는 아이들에게 개인과외나 학원을 보내는 거 외엔 부모로서 코치해줄 게 없다. 허재 아들 둘이 국가대표가 된 이유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와 아이들이 농구를 하려는 의지에 아버지의 코치가 있어 가능했다. 공부도 아이들의 지적 욕구를 코치해줄 수 있는 부모가 있다면 더 잘하게 된다.

코로나19로 인해 문화적 자본이 풍부한 부류와 그렇지 못한 부류의 격차가 더 심해지고 있다. 학창시절 성실함과 노력으로 좋은 대학에 진학해 좋은 직업을 갖게 돼 상류층으로 사는 부모가 자녀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게 당연하다. 속된 말로 가방끈 긴 고소득층 아빠를 둔 아이가 반칙 없이 성공하는 건 불공평한 게 아니다. 일부 유전자를 물려받지 못한 상류층의 아이가 아빠 찬스, 엄마 찬스를 통한 성취에 한해 분노해야 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