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와당 연구가

고구려 지안 국내성 유적에서는 삼존불상문 외에 좌불(坐佛)을 소재로 한 와당이 여러 점 출토돼 민간에 수장되고 있다. 경주지역에서도 불상문 와당이 출토된 사례가 있으나 이는 통일신라 소작이다.

그런데 고구려 좌불상문 와당에서 주목되는 것은 바른 글씨로 나타나 있는 명문이다. 삼존불 와당에는 ‘아황(阿皇)’이라고만 나타나는데, 이 와당에서는 ‘대아황사(大阿皇寺)’라고 되어 있다. 이 좌불상문 명문 와당으로 아황사가 ‘대아황사’로도 불렸음을 알 수가 있다.

고대 와당에 ‘大’ 혹은 ‘官’ ‘皇’자가 붙여진 명문와는 궁중이나 관립(官立)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진 건축물에 사용됐던 것으로 판단된다. 백제 별도(別都)였던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도 ‘大官’이란 명문와가 조사된 적이 있다. 대아황사는 왕성인 국내성 안의 대규모 왕실가람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대 아황사 와당 ⓒ천지일보 2020.10.19
대 아황사 와당 ⓒ천지일보 2020.10.19

삼국시대 고구려나 신라에서는 왕을 황제로 부르고 폐하(陛下)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광개토대왕비에 나오는 ‘大王’은 王이 아닌 황제를 뜻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고대 중국 황실에서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런 황제 호칭은 고려시대까지 전해 내려온다.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사대적 입장에서 황제라고 쓰인 삼국시대 기록을 많이 없앴다. 그러나 삼국유사를 기술한 일연선사는 임금을 황제나 폐하로 호칭했던 일화를 그대로 살려뒀다. 신라 차득공(車得公)은 문무왕의 서제(庶弟)였다. 삼국통일 후 문무왕이 재상에 임명할 뜻을 비치자 배알하는 자리에서 호칭을 ‘폐하’로 한다. ‘폐하께서 신을 재상으로 삼으신다면 나라 안을 몰래 다니면서 백성들의 고역을 살피겠나이다…(意譯. 삼국유사 권제2 紀異第二 文虎王 法敏 條)’

이 불상문 와당은 중앙에 합장한 좌불을 배치하고 왼쪽에는 ‘大阿’, 오른쪽은 ‘皇寺’라는 고졸한 예서(隸書) 명문을 종서로 새겼다. 불상의 머리는 나발이며 육계가 뾰족하며 크다. 얼굴은 원만상이나 눈두덩을 두껍게 표현해 웃고 있는 상으로 자비롭다. 코와 아래 입술이 유난히 크며 법의는 삼국시대 유행했던 통견(通肩)으로 양팔과 무릎에 주름을 표현했다. 원형의 좌대에는 중판 앙련(仰蓮)이 있다. 색깔은 적색. 모래가 섞인 경질이다.

주연은 아무런 무늬가 없는 소문대. 경 18.5㎝, 두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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