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역 곳곳의 역사를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흔하게 역사 교과서 등에서 볼 수 있는 주제가 아닌,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지역을 지켜줬던 과거의 흔적들을 찾아보는 시간이 됩니다. 이 글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알고 이곳에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음을 다시금 감사하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의령군 의령읍 의병박물관에 전시된 곽재우 장군 의병들의 전투 모형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의령군 의령읍 의병박물관에 전시된 곽재우 장군 의병들의 전투 모형

◆ 붉은 옷의 장군

“왜적들이 이 지방(의령)에는 홍의장군이 있으니 조심하여 피해야 한다고 했다.”

- <선조실록> 6월 기록 中

곽재우가 의병을 일으키자 김면·조종도·곽준 등이 거창·성주에서, 조식의 수제자인 정인홍도 합천·고령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했다. 이들은 판관 김시민과 함께 진주성을 방어하면서 활동을 이어갔다. 이후 김면이 사망하고 곽재우가 경상좌도 직책을 받으면서 경상우도의 의병을 통괄했고 구성인원도 의령 사람뿐만 아니라 창녕 인근의 인사들까지 포함했다.

임진왜란은 의병과 이순신 장군의 활약으로 승기가 점점 조선쪽으로 옮겨졌다. 곽재우의 전술은 기본적으로 위장·매복 등을 통한 유격적으로 적을 교란시켰다. 곽재우가 유격전을 통해 일본군을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고향 의령의 지리를 잘 알고 있었고 이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임진왜란 당시 관군의 활약보다 의병의 활약이 두드러질 수 있었던 이유기도 했다.

곽재우는 스스로 ‘천강홍의장군(天降紅衣將軍)’이라 칭했다. 그가 입고 있던 붉은 옷은 아버지 곽월이 명 사신으로 파견됐을 때 얻어 온 붉은 비단으로 만든 것이었다. ‘홍의장군’으로 이름을 떨치던 곽재우는 전공을 인정받아 유곡찰방(幽谷察訪)·형조정랑(刑曹正郎)·절충장군(折衝將軍)·조방장(助防將)에 이어 성주목사가 돼 정진을 방어하는 임무까지 맡는다.

이후 곽재우는 산성을 거점으로 하는 방어전을 전개할 것을 주장했고 조정은 이를 수용하여 곽재우에게 의령·단성·고령 등 주요 산성을 총괄하도록 했다. 명을 받은 곽재우는 악견산성·용기산성·구성산성 등을 정비했다.

곽재우 장군 관련 유물(출처: 문화재청)
곽재우 장군 관련 유물(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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