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가 타고 있던 차량의 속도를 늦추게 하고 이른바 '세 손가락 경례'를 했다는 이유로 태국의 반정부 인사 두 명이 체포됐다.

반정부 집회에서 커지는 ‘군주제 개혁’ 목소리에 대한 당국의 강경 대응을 시사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일간 방콕포스트는 16일 수티다 왕비에게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반정부 활동가 에까차이 홍깡완(43)과 분꾸에눈 빠오톤 두 명이 이날 경찰에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은 전날 방콕 형사법원에 의해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였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형법 제110조는 국왕이나 왕비의 자유를 방해하는 어떤 종류의 폭력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을 어길 경우 형량은 최소 징역 16년에서 최대 무기징역이다.

왕과 왕비, 왕세자 등 왕실 구성원은 물론 왕가의 업적을 모독하거나 왕가에 대한 부정적 묘사 등을 하는 경우 최고 1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게 한 형법 제112조, 이른바 '왕실모독죄'보다 더 중형이다.

에까차이 등 두 명은 지난 14일 오후 5시 30분께 반정부 집회 장소 인근인 핏사눌록 거리에서 외부 행사 참석차 왕궁을 나선 수티다 왕비와 디빵꼰 왕세자가 타고 있던 차량의 속도를 늦추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수티다 왕비는 마하 와치랄롱꼰 국왕을 대신해 도심 내 사원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차 이동 중이었다.

에까차이 등 두 명은 왕비 차량을 향해 '세 손가락 경례'를 한 것도 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에 적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세 손가락 경례는 영화 ‘헝거 게임: 판엠의 불꽃(2012)’에서 나온 제스처로, 2014년 태국 쿠데타 당시 이에 항의하고 반대하는 표시로 사용된 이후 반정부 세력 사이에서 독재나 군부 정권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통한다.

경찰은 왕비 차량 동선에 시위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지만, 많은 이들이 차량 쪽으로 다가선 뒤 세 손가락 경례를 했다고 방콕포스트는 전했다.

이 일이 SNS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왕당파들은 반발했다.

결국 이 일이 일어난 뒤 12시간도 지나지 않아 다음날 오전 4시 태국 정부는 5인 이상 정치 집회를 금지하는 긴급칙령을 발효했다.

반정부 시위대 2만명가량이 바리케이드와 차벽을 뚫고 총리실 건물까지 진출한 것도 비상조치의 한 원인이지만, 외신은 왕비 차량 행렬과 관련된 사건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반정부 활동가들이 왕실과 관련된 문제로 체포되면서 쁘라윳 짠오차 총리 퇴진과 함께 반정부 단체들이 주장하는 군주제 개혁 요구에 영향이 미칠지 주목된다.

이와 관련해 14일 집회를 주도했던 인권변호사 아논 남빠는 “미심쩍게도 경찰이 왕비 차량 행렬을 집회 지역으로 안내했다”면서 “시위대에게 폭도라는 색칠을 하고 싶은 것”이라고 비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방콕=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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