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단독] “백제미소불, 통일신라 초기 작품” 주장 나와
[문화단독] “백제미소불, 통일신라 초기 작품” 주장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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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암출토 금동관음상 앞뒤 모습 (출처:문화유산회복재단) ⓒ천지일보 2020.10.14
규암출토 금동관음상 앞뒤 모습 (출처:문화유산회복재단) ⓒ천지일보 2020.10.14

오른발 구부려 하체 튼 모습 
공주·부여 출토 불상과 달라
 

옷에 정교히 새긴 장식문양
통일신라기 등장하는 양식
 

남북조시대 불상 비교 분석
이재준 ‘학계서 재검토해야’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한 때 국내 언론을 떠들썩하게 달군 일본인 수장 ‘백제미소 금동관음불상’. 이 불상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매입 가격 문제로 국내 환수가 실패한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그런데 이 불상의 국적이 백제 것이 아니고 통일신라시대 초기의 작품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불교미술을 전공한 한국역사문화연구회 이재준 고문(전 충청북도 문화재 위원)은 이 같은 사실을 본보에 제공,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고문은 지난 6월 30일 충북문화재연구원에서 열린 2020 충북문화재조사기관협의회 주최 학술발표회에서 ‘삼국시대 금동미륵불상의 신례’ 연구를 통해 기존 통념을 깨는 발표를 해 주목을 받은바 있다. 이 고문은 여기서 신라 삼국시대 영향을 준 중국의 남북조시대의 여러 불상을 비교분석해 삼국시대 신라불상의 양식을 새롭게 규명했다.

◆신라 통일 초기 유행 모습 닮아

이 고문이 신라불상이라고 주장한 근거는 비록 백제 규암면 사지에서 출토됐지만 각부 양식이 신라 통일 초기 유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공주·부여에서 그동안 출토된 남조(南朝) 영향을 받은 전형적인 백제금동보살상과는 각 부양식이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 고문은 우선 규암면 출토 금동보살상의 경우 오른쪽 발을 약간 구부려 하체를 약간 틀고 있음을 들고 있다. 이는 백제 관음상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통일신라대 유행한 양식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양식은 경주박물관 소장의 신라 금동관음상을 비롯해 여러 점이 조사되고 있음을 들고 있다. 또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통일신라 금동보살상 가운데도 이 같은 예가 보인다(도판)’고 설명했다.

또한 이 고문은 금동상의 천의(天衣)에 정교하게 음각된 당초문(唐草紋)의 경우도 통일신라기에 등장하는 양식임을 밝히고 있다. 경북 선산에서 출토된 통일신라 금동관음상(국보 제183호)이 있으며 규암출토 금동상과 상호 신체의 모습 등이 많이 닮았다고 주장했다. 경북 선산 출토 금동보살상은 오른손에 보주(寶珠)를 들고 있는 상이다.

이 고문은 법의 옷깃에 당초문대를 음각으로 조각한 것은 일본에 있는 7세기 후반 반가사유상에서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사카 야중사(野中寺)에 소장된 하쿠호 시대(666AD) 금동반가사유상은 치마 옷깃에 세장한 당초문을 음각으로 조각했다.

이 고문은 금동관음상의 대좌(臺座)에서도 시대의 하한을 엿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삼국시대 백제 관음상의 경우는 대게 좌대와 불신을 같이 주조하는 통주(通鑄)형식인데 반해 이 불상은 대좌를 결실하고 있으며 원래는 따로 제작했을 것이라고 부연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고문은 “규암 출토 금동관음상은 당나라 불교조각 수법의 영향을 받은 통일신라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지만 보관 등에서 백제 양식이 계승되고 있으며, 아름다운 상호와 천의, 영락 등 화려한 장식물이 돋보이는 뛰어난 예술품”이라고 덧붙였다.

도쿄 국립박물관 소장 통일신라 금동불상(왼쪽)과 국보 제183호 선산출토 금동관음상(오른쪽) (제공: 이재준 한국역사문화연구원 고문) ⓒ천지일보 2020.10.14
도쿄 국립박물관 소장 통일신라 금동불상(왼쪽)과 국보 제183호 선산출토 금동관음상(오른쪽) (제공: 이재준 한국역사문화연구원 고문) ⓒ천지일보 2020.10.14

◆매입 가격 협상 불발로 국내 환수 실패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병훈(광주광역시 동구남구을) 의원이 문화재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매입 가격 문제로 협상이 결렬된 2018년 이후 백제미소보살 환수 절차를 중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제미소보살은 1907년 충남 부여 규암면의 한 절터에서 두 점이 발견됐다. 한 점은 국보 제293호로 지정돼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문화재청이 환수를 추진하던 다른 한 점은 당시 일본 헌병대에 의해 압수됐었다. 이후 일본인 수집가 이치다 지로가 경매로 사들여 일본으로 반출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청에서는 감정가를 반영한 백제미소보살의 환수 금액으로 42억원을 제시했으나 일본 소장자 측에서는 약 150억원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학계에 따르면, 이 금동관음보살상은 ‘백제의 미소’가 가장 잘 표현된 작품이다. 학계는 이 불상이 국보 78호·83호 반가사유상, 국보 287호 백제금동대향로와 맞먹는 명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불상은 높이 28㎝로, 머리에 보관을 쓰고 왼손에 보병을 들고 있다. 또 인자한 미소를 띤 표정과 어깨·허리 등을 살짝 비튼 자세, 천의를 두르고 구슬장식(영락)을 걸친 모습 등이 완벽한 조화와 미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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