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월 크라이스트처치의 헤글리 공원에서 열린 이슬람 사원 총격 사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에서 히잡을 쓴 상태로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는 아던 총리. (출처: 뉴시스)
작년 3월 크라이스트처치의 헤글리 공원에서 열린 이슬람 사원 총격 사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에서 히잡을 쓴 상태로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는 아던 총리. (출처: 뉴시스)

17일 뉴질랜드 총선 실시

아던 재선 확실, 노동당에 주목

“학창시절 정의감 강한 소녀”

노동당 대표·총리 모두 최연소

위기 때마다 빠른 대응에 찬사

[천지일보=이솜 기자] 뉴질랜드 북섬에 있는 작은 도시 모린스빌.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이곳 항해 테마 배달점 카운터에서 피시앤칩스 주문을 받고 있던 때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제 40세의 뉴질랜드 총리는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지도자 중 한 명이 됐다.

오는 17일(현지시간) 뉴질랜드가 총선을 치르는 가운데 외신들이 아던 총리의 재선을 확실시 하며 그의 리더십을 집중 조명했다.

이번 총선에서 그의 재선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이번 총선의 관심은 아던 총리가 속한 노동당이 처음으로 과반수를 확보하면서 뉴질랜드의 새 역사를 만들 것인지 여부다.

◆보수 텃밭에서 자란 진보 스타

1980년 모르몬 교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던 총리는 유년 시절을 작고 가난한 무루파라 지역에서 보냈다. 아던 총리는 의회 첫 번째 연설에서 “사회 정의에 대한 자신의 열정은 무루파라에서 본 것 때문에 시작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아던 총리의 가족은 모린스빌로 이사를 갔는데, 모린스빌은 우유를 생산하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역사적으로 농부들은 친기업적 국민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는데, 모린스빌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 세계 진보주의자들의 총아로 거듭난 아던이 자란 곳은 국민당의 텃밭이었다.

아던의 아버지는 마을의 경찰관으로, 어머니는 학교에서 요리사로 근무했다. 14살의 아던 총리는 피쉬앤칩스 가게에서 방과 후 교대 근무를 했다. 모린스빌의 농부 존 월시는 아던 총리에 대해 “항상 말솜씨가 좋았다”고 회상했다.

아던이 학생이던 1990년대 첫 정치적 승리를 거둔 것 역시 그의 말솜씨가 한 몫을 했다. 아던은 모린스빌 고등학교 이사회 학생 대표였는데, 여학생들이 학교에서 치마뿐만 아니라 반바지를 입을 수 있도록 위원회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학교의 교장이었던 존 잉거는 아던 총리를 두고 “시대를 앞서간 기억이 난다”며 지적이고, 명랑하고, 사회적 정의감이 강하다고 기억했다. 토론을 좋아했으며 많은 연설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아던 총리는 당시 또래들과 달리 술을 마시지 않았으며 인기는 있었으나 유행을 따르는 소위 ‘쿨한’ 아이는 아니었다고 한다. 이러한 자질을 친구들이 알아본 것일까. 1998년 졸업앨범에는 반 친구들이 서로의 미래에 대해 투표를 한 내용도 담겼는데, 아던에게는 다음의 문구를 써 놓았다. ‘총리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정치 입문 수식어 ‘최연소·파격’

고등학교 졸업 후 수도 웰링턴으로 간 아던은 18세에 노동당에 입당했다. 와이카토 대학을 커뮤니케이션학으로 졸업한 후 노동당의 첫 여성 총리인 헬렌 클라크의 사무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이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정책 자문으로 활동했다. 28세가 된 아던은 정치 활동에 본격 나서기 위해 뉴질랜드로 돌아왔다. 직접 선출은 아니었으나 비례대표로 의회에 입성한 최연소 의원이 됐다.

아던 총리는 37세였던 2017년 9월 노동당 최연소 지도자로 선출돼 정권 교체를 이루면서 큰 주목을 받게 됐다. 당시 노동당과 국민당 모두 나라를 이끌기 위해 필요한 득표율 50%를 얻지 못해 군소 정당과 연합해야하는 상황이었는데, 당시 아던 대표가 보수 정당인 제일당의 윈스턴 피터스 대표와 직접 담판을 벌여 연정을 이뤘기 때문이다. 이에 노동당은 9년 만에 집권당으로 올라섰으며, 아던 총리는 노동당 대표가 된 지 2개월 만에 총리직을 맡게 됐다. 그는 뉴질랜드뿐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나 최연소 국가 원수 중 한 명이었다.

아던 총리는 기존의 지도자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취임 두 달도 안된 2018년 1월 임신 소식을 발표했지만 그의 파트너 클라크 게이퍼드와 결혼하지는 않았다. 몇 달 후 아던은 역사를 다시 썼다. 그녀는 아기를 유엔 총회에 데려온 첫 번째 지도자가 됐다.

아던 총리는 코로나19 봉쇄 기간 동안 페이스북 생방송을 통해 국민과 계속 소통하면서 국민들의 방역 동참을 이끌어냈다. 사진은 지난 8월 페이스북 생방송을 하고 있는 아던 총리. (출처: 저신다 아던 총리 페이스북 캡처)
아던 총리는 코로나19 봉쇄 기간 동안 페이스북 생방송을 통해 국민과 계속 소통하면서 국민들의 방역 동참을 이끌어냈다. 사진은 지난 8월 페이스북 생방송을 하고 있는 아던 총리. (출처: 저신다 아던 총리 페이스북 캡처)

◆재난 속 리더십 찬사 받아

아던 총리의 빛나는 리더십은 재난 상황에서 발휘됐다. 작년 3월 총기 살인사건이 빈번하지 않은 뉴질랜드에서 백인우월주의자가 한 이슬람 사원에 총격을 가해 51명이 숨졌다. 사건 발생 몇 시간 후 아던 총리는 총기법이 바뀔 것이라고 밝혔으며 용의자를 테러리스트라고 선언했고, 이름을 밝히지 않으면서 그가 원하는 악명을 씌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피해를 입은 이슬람 공동체를 즉시 방문해 히잡을 쓴 채 함께 애도하는 장면은 전 세계를 감동시켰다.

벤 토머스 뉴질랜드 정치평론가는 CNN에 “그는 위기의 시기에 확실히 탁월하다”며 “진짜 필요한 것은 공감의 표현이었다. 그녀의 거대한 공감은 매우 진실하며 세계무대에서도 누구보다 효과적으로 그것을 투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던 총리는 작년 12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화이트 아일랜드가 폭발해 21명이 숨졌을 때에도 최초 대응자들과 포옹하며 재빠르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역시 찬사를 받고 있는데, 아던 총리는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이 주춤하는 동안 국경을 조기에 폐쇄하고 엄격한 전국 봉쇄를 지시했다. 아던 총리는 국영TV 일일 브리핑에 보건당국자와 함께 나와 의료 전문가들의 말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며 거듭 강조했다. 봉쇄 기간 동안 뉴질랜드 국민들에게 아던 총리의 방송은 ‘하나의 의식’이 됐다고 CNN은 전했다. 13일 기준 뉴질랜드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1514명이며 사망자 수는 25명이다.

◆경제·혁신 등 비난도

그러나 아던 총리의 첫 임기가 성공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리고 그녀의 반대자들 중 몇몇은 그녀가 자란 이곳 모린스빌에 있다.

모린스빌 농부인 로이드 다우닝은 아던 총리의 가족을 알고 심지어 그의 할아버지 장례식에도 갔었다. 다우닝은 “우리는 아던 총리를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면서도 아던 총리의 정책이 불필요한 경제적 위험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우닝은 아던 총리와 노동당이 엄격한 환경 규제를 만들어 농민들의 삶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노동당이 사업적 전문 지식이 없다고 우려했다. 다우닝은 “아던 총리는 술 취한 선원들처럼 돈을 마구 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뉴질랜드는 올해 대유행의 경제적 영향에 대처하기 위해 더 많은 공적 부채를 떠안았다. 뉴질랜드의 부채는 2019년 국내총생산(GDP)의 19%에서 올해 43%로, 2024년에는 국내총생산(GDP)의 55%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노동당은 경기 침체를 완화하기 위해 부채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국민당은 이를 어떻게 상환할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일각에서는 그가 3년 전에 약속한 ‘혁신 정부’를 위해 첫 임기 동안 한 일이 거의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10년 내 10만채의 양질의 저렴한 주택을 짓겠다는 그의 대표 공약이 그 한 예인데, 이는 무주택 문제를 해결하고 과열된 부동산 시장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었다. 2019년 9월 아던 정부는 목표치를 포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5월 웰링턴 국회에서 생방송 인터뷰 중 규모 5.8의 진동을 감지하고 천장 쪽을 바라보는 아던 총리. 아던 총리는 흔들림 없이 냉정한 태도를 보여 전 세계 네티즌의 호응을 얻었다. 특히 위기 상황에 혼자 피신하지 않고 주변 스태프와 함께했다는 점이 주목받았다. (출처: 뉴시스)
지난 5월 웰링턴 국회에서 생방송 인터뷰 중 규모 5.8의 진동을 감지하고 천장 쪽을 바라보는 아던 총리. 아던 총리는 흔들림 없이 냉정한 태도를 보여 전 세계 네티즌의 호응을 얻었다. 특히 위기 상황에 혼자 피신하지 않고 주변 스태프와 함께했다는 점이 주목받았다. (출처: 뉴시스)

◆노동당 의석 과반 차지할까

한편으로 아던 총리는 중요한 정책 변화를 만들기 위해 힘든 싸움을 해 왔다. 어떤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제1당인 국민당뿐 아니라 연립 정당인 제일당의 지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총선에서는 노동당이 과반을 차지할 수 있을지 여부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일단 여론조사에 따르면 노동당이 국민당에 크게 앞서며 선거에서 승리할 것으로 보이지만, 과반을 차지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그렇게 된다면 전례 없는 역사적 상황이 될 것이다. 뉴질랜드의 현재 정치 체계가 1996년에 도입된 이후, 어느 정당도 절반 이상의 표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항상 다른 정당들과 연합 정부를 구성해왔다.

노동당이 제1당으로 서게 된다면, 아던 총리로서는 좀 더 혁신적인 정책을 밀고 나갈 수 있다는 기대를 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아던 총리는 ▲2030년까지 인프라 지출 증대 ▲주택 부족 문제 해결 ▲의료 개선 ▲100% 재생 전력 달성 등의 공약을 가지고 출마했다.

아던 총리의 행보가 능수능란한 국가 재난과 위기 처리에서 끝날지, 현재 얻고 있는 인기를 다른 방법으로 뉴질랜드의 혁신을 이끌어낼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는 이번 주말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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