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조기. ⓒ천지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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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이솜 기자] 미국 대통령 선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이번 선거에 대한 혼란이 가중되면서 헌법상의 위기와 심지어 폭력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미국 내외에서 커지고 있다.

대유행병이 투표의 성격을 바꾸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여론조사와 우편투표의 공정성을 의심하고, 또한 당선 불복에 대한 약속도 하지 않음으로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선거일 당일 밤에 대통령이 결정되지 않았던 2000년 미국의 악몽,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트럼프 대선에 불신 심어… 폭력사태 우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은 우편 투표를 선거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로 만들었다. 코로나19로 25개 주 이상에서 보편적 우편 투표에 대한 접근을 확대했다.

그러나 몇 달 동안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선거 대리인단은 이번 대선의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해왔다. 그는 우편투표를 한 뒤 현장에서도 투표를 하라고 권장했으며 외국에서 선거를 조작하기 위해 우편 투표용지를 인쇄할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선거 당일 투표장에 가서 ‘도둑질’을 주의하라고 당부해왔다. 그러나 11일(현지시간) CNN방송은 미국 투표 과정의 취약성에 대한 그의 주장은 현실적으로 근거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우편 투표와 관련한 사고가 없던 것은 아니다. 지난 달 뉴욕 브루클린에서는 업자의 실수로 10만명의 가까운 유권자들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투표 봉투를 받았다. 앞서 미시간 예비선거에서는 2200명 이상의 투표용지에 유권자의 서명이 없어 부결되기도 했다. 1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러한 문제들은 필요한 자원 없이 기록적인 속도로 전염병에 대응하기 위해 분열된 시스템을 보여준다”며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실수가 부정 투표의 문을 열어주지는 않는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선거 전문가들은 우편투표의 부정행위보다는 투표의 거부와 선거권 박탈의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에 대해 더 많이 우려하고 있다. 데이비드 베커 선거혁신연구센터 전무는 “수기 투표는 과소투표와 과다투표 문제를 일으키는 오표율 비율이 더 높았다”며 “이것(수기 투표)은 일반적으로 ‘더 희고, 더 부유하고, 더 나이가 많은’ 유권자들이 아닌 사람들에게 덜 영향을 미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투표 거부율이 높아지면 이미 소송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소송 가능성을 더욱 높일 수 있다. 스탠포드-MIT 건강선거프로젝트에 따르면 이미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등에서는 우편 투표를 둘러싼 법과 정책에 관한 소송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해외에서 선거에 도전한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부정 선거’ 발언 자체 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수십년 동안 남아프리카 공화국 전역에서 전국 및 정당 선거를 조직해온 드렌 누펜은 “트럼프 대통령이 부정선거에 대한 서술에 대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것은 내가 일했던 다른 관할구역에서도 발생했다”고 CNN에 말했다. 그는 “(트럼프는) 이번 일이 공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유권자들의 마음에 씨앗을 심고 있다. 그의 탄약은 유권자들이다”라며 “만약 패할 경우 투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를 동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누펜은 짐바브웨의 2008년 대선을 인용하기도 했는데, 당시 선거의 공정성을 둘러싸고 갈등이 불거졌고 유혈 폭력사태가 발생해 약 200명이 숨졌다. 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대선 후 부정선거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 같은 우려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잭슨빌=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 플로리다주 잭슨빌의 세실 공항에서 연설을 마친 후 연단에서 내려오자 한 여성 지지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잭슨빌=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 플로리다주 잭슨빌의 세실 공항에서 연설을 마친 후 연단에서 내려오자 한 여성 지지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민주주의의 전형’이었던 나라

아마도 수년 동안 미국 관리들로부터 미국이 민주주의의 전형을 상징한다는 말을 들은 국제 전문가들은 최근 미국의 상황에 대해 적지 않은 ‘샤든프로이더(schadenfreude, 남의 불행에 대해 갖는 쾌감)’를 느꼈을 것이다. 누펜은 “내가 선거에 출마했을 때, 아프리카 정치 분석가들은 항상 미국 전문가들이 우리 시스템을 뻔뻔하게 판단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우려 속에도 남아공 독립 선거 위원회는 역사적인 1994년도의 투표를 포함한 6개의 총선을 별 소란 없이 치렀다.

미국의 선거제도는 상당히 복잡한데, 고도로 분산된 선거소가 1만여개의 관할 구역에 퍼져있다. 그러나 미국의 주정부와 지방정부 관리들은 지금껏 경쟁이 치열한 선거를 치르는 데 성공했다.

케냐 정치평론가 겸 투자전문가인 오리 오콜라-므완기는 “당신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강력한 제도가 아닌 예절이자 좋은 행동일 뿐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사실을 드러나게 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1982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시작해 39개국에서 111개의 선거를 감시해 온 ‘카터센터’ 역시 현재 미국의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카터 센터의 민주당 선거 표준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있는 에이버리 데이비스 로버츠는 미국인들이 투표의 공정성과 안전성에 대해 자신감을 갖도록 특별조치를 취한 지방정부 관리들과 주정부 관리들의 공로를 인정하면서도, 이 과정에 대한 최근의 의구심이 가장 높은 정부기관에서 비롯된 것에 대해 한탄했다. 데이비스 로버츠는 “미국 민주주의는 선거 과정에 대한 믿음이 있다”며 “이것은 우리 국가 정체성의 초석인데, 심지어 우리가 이런 대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많은 미국인들을 괴롭히고 있다”고 말했다.

[클리블랜드=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케이스 리저브 웨스턴 대학에서 열린 제1차 TV 토론에 참석하고 있다.
[클리블랜드=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케이스 리저브 웨스턴 대학에서 열린 제1차 TV 토론에 참석하고 있다.

◆대선 변수에 대비하는 해외

주요국들은 곧 직면할 수도 있는 초강대국의 혼란을 미리 대비하는 양상이다. 지난 9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캐나다 외교부는 11월 3일 대선 이후 미국이 예측하기 어려운 혼란에 휩싸일 것으로 전망하고 구체적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캐나다는 비슷한 전망을 하고 있는 다른 주요 7개국(G7) 국가들과 소통하면서 미국의 혼란에 어떻게 대비할지를 놓고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저스틴 트뤼도 총리실은 시나리오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으나 소식통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나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확실한 승리부터 매우 근소한 차이의 결과, 개표 결과 발표 지연 등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바탕으로 시나리오가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트뤼도 총리는 지난 6일에는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를 우려해 보고 있다며 “미국 선거가 캐나다 경제와 캐나다에 미칠 잠재적 영향 때문에 우리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보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대선 결과가) 명확하지 않으면 일부 차질이 있을 수 있고 어떤 결과에 대해서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캐나다 관리들은 또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와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가 붙었지만 개표 논란으로 해결하는 데 5주가 걸렸던 2000년의 대선 상황도 다시 살펴보고 있다.

당시 뉴욕 금융시장도 5주간 S&P500지수는 4% 넘게 떨어지고 금리가 52bp 하락했으며 금은 12% 오르는 등 혼돈 속에 있었다. 또 혼란이 이어지던 12월 미시건대 소비자신뢰지수도 전월대비 9% 급락하고 이듬해 2월까지 하락세를 지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1일 한국은행은 “우편투표 확대가 선거결과 확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투표 이후 한동안 경제심리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캐나다 관계자들은 극단적인 시나리오까지는 보고 있지 않다고 언급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날 오타와에서 열린 토론에 정통한 한 인사는 “아무리 (선거 결과가) 나빠지더라도 국경을 향해 미친 듯이 돌진하는 사람들의 홍수를 진지하게 고려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콜린 로버트슨 전 캐나다 외교관은 “총리실에서 ‘만약 일이 매우 안 좋게 진행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며 “그러나 이런 우려는 주로 미국에서 근무한 적이 없어 미국 기관에 대한 이해가 낮은 관리들로부터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럽의회 출신으로 현재 스탠퍼드대 사이버정책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마리에트 셰이크도 CNN에 “트럼프 대통령의 미사여구가 미칠 파장을 과대평가하지 않는 것과 11월 선거를 평가할 때 경쟁이 치열했지만 평화로운 선거를 치른 미국의 역사적 선례가 중요하다”며 극단적 시나리오에 대한 경계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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