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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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광장에서 신형 ICBM과 SLBM을 구경하리란 것은 예정된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울먹이는 모습을 보리라 예상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이거 뭐 ‘수령숭배’에서 ‘인민숭배’로 바뀐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심지어 김 위원장은 연설 말미에 “인민 만세”를 외쳐 모두를 아연질색하게 만들었다. 노동당은 그야말로 해방 직후 1945년 10월 10일 창당해 오늘까지 75년을 이어왔지만 그 최고 수뇌들인 김일성 김정일은 언제 한번 인민 만세를 부르며 울먹인 경우는 전무하지 않는가.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하늘같고 바다 같은 우리 인민의 너무도 크나큰 믿음을 받아안기만 하면서 언제나 제대로 한번 보답이 따르지 못해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제가 전체 인민의 신임 속에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위업을 받들어 이 나라를 이끄는 중책을 지니고 있지만 아직 노력과 정성이 부족하여 우리 인민들이 생활상의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 원인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았다. 제재·코로나19·자연재해라는 ‘3중 재난’에 직면해 경제가 후퇴하며 인민들의 생활 형편이 더 어려워진 현실과 관련한 최고지도자로서의 미안함과 위안을 담은 ‘머리 숙이기’로 풀이된다. 논리적으론 “인민대중제일주의”를 내세운 통치전략의 연장선이다.

김 위원장은 “그럼에도 우리 인민들은 언제나 나를 믿고 나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따라주었다며 전체 인민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그러고는 “한 명의 악성 비루스(바이러스) 피해자도 없이 모두가 건강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오늘 이렇게 우리 인민 모두가 무병 무탈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거듭 고마움을 표했다. 지금껏 코로나19 확진자가 한명도 없다는 북한 당국의 공식 발표의 연장선에 있는 논리 전개다. 계속하여 김 위원장은 “우리 인민의 힘과 넋이 깃든 강위력한 최신 무기들로 장비한 혁명무력이 있기에 그 어떤 침략 세력도 절대로 신성한 우리 국가를 넘볼 수 없으며 조선인민의 앞길을 막지 못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제 남은 것은 우리 인민이 더는 고생을 모르고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마음껏 누리게 하는 것”이라며 “인민들이 꿈속에도 그려보는 부흥번영의 이상사회를 최대로 앞당겨 올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어 “(내년 1월 초 열릴 예정인) 조선노동당 8차 대회는 그 실현을 위한 방향과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게 될 것”이라며 “인민의 행복을 마련해 나가는 우리 당의 투쟁은 이제 새로운 단계에로 이행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8차 당대회에서 ‘인민의 부흥번영’을 목표로 한 경제전략을 제시하겠다는 중대 예고다.

8차 당대회의 초점이 군사안보보다 ‘경제’ 쪽을 향하리라는 시사로 읽혀 주목된다. 김 위원장은 “시간은 우리 편에 있다”고 강조한 뒤 “위대한 우리 인민 만세”라는 말로 긴 연설을 마무리했다. 한편 이날 김 위원장은 미국에 대한 언급 없이 전쟁억제력 지속강화 의지를 재확인했다. 반면 남측을 향해선 유화적 메시지를 내놔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코로나19를 언급하며 “사랑하는 남녘 동포들에게 보건위기가 극복되고 굳건하게 손 맞잡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은 남녘 동포들에게 한 메시지이지 한국 정부에 한 말은 아니니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또한 김 위원장은 공개 연설에서 “그 누구를 겨냥해 전쟁억제력을 키우는 것은 아니다”라며 “우리 스스로를 지키자고 키우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의 전쟁억제력이 결코 남용되거나 절대로 선제적으로 쓰이지는 않겠지만, 만약 그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안전을 다쳐놓는다면 우리를 겨냥해 군사력을 사용하려 든다면 나는 우리의 가장 강력한 공격적인 힘을 선제적으로 총동원하여 응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느 때와 달리 공세적이기 보다 수세적인 수위를 드러내 아직 북미회담에 기대를 걸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김 위원장의 인민 만세가 빈말이 안 되기를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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