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갑질.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직장갑질119 제보 ‘23건’… 중기부 ‘0건’

“정부, 제도 통합해 관리·감독 철저해야”

[천지일보=최빛나 기자] #1. 상사가 본인도 주체를 못할 정도로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너무 심하면 사과하기도 하고 다시 폭언을 하는 날들이 계속됐습니다. 청년내일채움공제 때문에 최소 2년은 버티자며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지냈습니다. 견디다 못해 상사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저에 대한 괴롭힘과 따돌림이 더욱 극심해졌습니다. 상사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사직서를 내고 말았습니다.

#2. 여러 사람이 있는 공간에서 대표에게 심한 폭언 등을 듣고 모욕감을 느껴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대표 폭언 등 갑질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바보냐’, ‘죽여 버린다’, ‘머리에 뭐가 들었냐’ 등 심각한 폭언이 계속 됐습니다. 내일채움공제 중 월급도 삭감됐는데 이유는 내일채움에 사업자 돈이 들어가는 등 저한테 들어가는 비용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3. 회사는 나라 지원금을 받기 위해 대표가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은 출퇴근 거리가 3시간 넘게 걸리는 공장으로 보내서 권고사직 하지 않고, 자진퇴사하게 만듭니다. 근로계약서에 필요에 따라 근무 장소 및 업무내용을 변경할 수 있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랍니다. 청년내일채움공제 때문에 버티고 있는데 정말 너무 힘듭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청년들은 정부의 내일채움공제를 ‘노예계약’이라고 부른다. 자진 퇴사할 경우 공제를 받지 못한다는 점을 악용해 폭언, 괴롭힘 등 직장갑질이 일어나고 있다”며 제보 받은 갑질 사례를 11일 공개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청년재직자 내일채움공제 중도해지 건수는 7580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90.4% 증가했고, 내일채움공제 해지율은 30.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갑질119는 “중기부가 파악한 부정, 부당 사례는 시행 2년이 지나도록 단 한 건도 없었다. 정부가 상담 전화를 열어 신고를 받고는 있지만, 신원이 드러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신고는 거의 없다”며 “직장갑질119에는 올해에만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가 23건 들어왔다”고 밝혔다.

이메일 제보사례는 ▲폭언·괴롭힘·성추행 등 직장갑질 ▲비정규직 계약 ▲최저임금 위반 ▲임금삭감·동결 ▲친인척 가입 등이다.

현재 중소기업과 청년을 지원하는 대표적인 제도는 내일채움공제(중소벤처기업부), 청년재직자 내일채움공제(중기부), 청년내일채움공제(고용노동부)가 있다.

청년재직자 내일채움공제는 15세에서 34세 이하의 청년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제도다. 청년노동자 월 12만원, 기업주가 20만원 적립했을 때 정부에서 초기 3년간 1080만원 추가 지원에서 5년 만기 시 청년 근로자에게 300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청년내일채움공제 역시 청년노동자가 월 12만 5000원(2년형) 또는 16만 5000원을 납부할 경우 정부지원금과 기업 기여금을 합쳐 1600만원(2년형) 또는 3000만원(3년형)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청년재직자가 회사의 귀책사유가 아닌 자발적으로 퇴사할 경우, 정부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 

단체는 “사용자들이 이를 이용해 폭언, 성추행, 노동법 위반, 불법가입, 사적지시 등 온갖 갑질을 일삼고 있지만, 정부는 어떤 감독도 하지 않는 실정”이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내일채움공제의 재가입 사유를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사업장의 휴폐업, 도산, 권고사직, 임금체불, 고용보험료 체납, 기타 지방관서장이 재가입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만 퇴사한 후 6개월 이내에 재취업할 것을 전제로 1회에 한해 재가입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직장갑질119는 “사업주의 귀책사유가 아니더라도 노동자의 귀책사유가 아닌 경우 재가입 요건에 포함되도록 해야 한다”며 “불가피한 사유로 이직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이유로 두 번 다시 이 제도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면 매우 가혹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가입 기간과 횟수 제한을 폐지하거나, 확대해야 한다”며 “사업장이 노동자에게 부당대우를 일삼으면서 노동자를 묶어두는 무기로 이 제도를 악용하도록 내버려두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사업장이 지원금 제도 취지에 반하는 노동관계법령 위반행위를 해 노동부의 시정명령을 받은 전력이 있거나, 부정수급이 적발되는 경우에 패널티 규정을 신설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며 “여러 부서로 나눠있는 정부 지원금 제도를 통폐합해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한울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청년내일채움공제는 월급만으로 목돈 마련이 어려운 청년들에게 그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인데 실질적으로는 괴롭힘 등 불법적인 상황에서조차 청년들이 자유롭게 퇴사하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가 되고 있다”며 “내일채움공제 재가입 여건을 완화하고, 근로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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