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부터 매년 서거일마다 명성태황후 추모예술제 개최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지난 2015년부터 명성황후 서거(1895.10.8)일을 맞아 매년 ‘명성태황후 추모예술제’를 개최해 왔던 정미애 조직위원장이 올해 125주기를 맞은 8일 홀로 명성황후를 기리며 추모했다.
명성황후를 추모하는 행사가 전무했던 상황에서 지난 2015년 첫 추모예술제를 개최한 이후 매년 서거일마다 행사를 거행해왔다. 또한 경기 여주시에 있는 명성황후 생가 및 기념관, 남양주에 있는 홍유릉(고종과 명성황후 합장 왕릉 묘소)도 찾아 기도와 절을 올리고 아리랑(명성황후아리랑, 을미사변아리랑 등)을 시창하며 명성황후를 추모했다.
아울러 을미사변·임오군란으로 순사(殉死)한 충신·열사를 제사하는 곳인 서울 중구의 장춘단에서도 창춘단아리랑을 시창하며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와 함께 희생당한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행사를 개최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인해 정미애 위원장은 비대면으로 지난 5년간의 추모예술제 행보를 되돌아보며 명성황후의 넋을 기리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정미애 위원장은 “8일은 을미사변이 일어난 지 125주년으로, 조선의 국모 명성황후께서 서거하신 날이다. 명성태황후를 추모하는 명성태황후 추모예술제 조직위원장으로서 60갑자가 두 번 돌아 제자리로 온 120주년(2015년)부터 행사를 외부에서 하객들을 모시고 5년간 진행해왔지만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으로 혼자 명성태황후를 기리며 추모했다. 공연장에 한자리에 모여 함께 하지는 못했으나 늘 함께 했던 이들과 마음으로나마 명성태황후께 기도했다”고 전했다. 또한 “코로나19를 함께 잘 극복하고 건강해서 오로지 행복하길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무술년 123주년(2018년) 제4회 명성태황후 추모예술제가 서울 서초구 반포동 엘루컨벤션 5층 연회장에서 열린 모습 ⓒ천지일보 2020.10.8
을미아리랑 / 정미애(지원)
내 소중한 것 빼앗기고
내 권리 짓밟히고
내 목숨 처절히 앗아간다 하여도
내 울분 사그라들지 않아
내 영혼 죽지 않고 살아났노라.
122년 전 을미 때부터 이 나라를 비춘
나는 조선의 국모, 명성태황후
일본은 나를 칼로 수없이 찌르고
나를 불태워
나의 얼굴, 나의 목소리 막아
연기되어 사라지도록 불살랐으나
나 영원히 죽지 않노라.
내 영혼 건천궁 달빛 되고
내 마음 이 민족 붙박이 별빛 되노라.
강산이 12번 바뀌고
내 염원 나의 기도가 이루어져
이 나라 자주독립 해방되고
이 민족 지구의 혈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솟았노라.
내 후손들이여, 자랑스럽도다.
나를 기억해다오.
내 눈물 닦아주오.
후손들이여! 불철주야 노력하여 반드시 힘을 길러
이 치욕의 역사를 바로 세워 주오.
이 슬픈 역사를 을미사변아리랑으로 불러주오.
이제 나는 너희를 용서하오니 어서 사과하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세계로 퍼져간다.
명성황후 아리랑 / 정미애(지원)
철종 2년 1851년
경기도 여주 근동면 섬락리에서
정3품사도사첨정
민치록의 여식으로 출생하시어
소학,효경을 부친에게 배우시고
역사에 심취하시어 독학하셨나이다
1858년 9세때
아버지 민치록께서
세상을 떠나시자
한산이씨 어머니와
서울 인현황후 사가인 감고당으로 이사하셨고
1866년 고종의 왕후를 간택할 때에
여흥민씨가문의 민자영은
흥선대원군의 부인 여흥부대부인의
적극적 지지로
그해 3월 6일 삼간택에
왕후로 간택 되셨나이다
대원군의 강력한 쇄국정책에 맞서
명성황후께서는
고종황제와 함께
중국 궁궐 일본 궁궐보다
2년이나 더 빨리
아시아 최초 전기불을 궁궐에 밝히셨나이다
명성황후께서는 타고 나신 지혜의 으뜸이시며
타고 나신 자주적 최고의 외교가로
20년이상 조선제국의 근대화를 이룩해내신
고종황제의 정치적 동반자였나이다
일본이 나아가려는 곳곳에
명성황후께서 버티고 계셔서
일본의 뜻대로 되지 않자
일본의 낭인들로 하여금
을미년에 궁궐에 들어와
고종황제침소에 구둣발로 들어와
칼로 위협하고
명성황후를 극악무도한 잔인한 방법으로
한나라의 국모를 살해하였나이다
조선제국을 위해 밤낮으로
해처럼 달빛처럼
조선의 밝은 별이셨던
만백성의 국모이신 명성태황후께서
꿈꾸셨던 나라는 조선제국의 근대화
4차혁명을 꿈꾸셨나이다
1895년 을미지변으로
명성황후께서 시해되시자
을미의병이 1895년 시작되어
1945년 해방되는 날까지
50년의 독립운동사가 이루어졌나이다
내영혼 건청궁 붙박이별이 되어
이나라를 지키리라
건청궁에 전등을 중국 궁궐 일본 궁궐보다
2년 앞서 전기불 밝히셨고
1945년 해방의 기쁨은 명성황후님의 기쁨이시며
빛을 찾기 위해 광복을 위해
목숨 바치신 모든 순국선열들의 승리이시나이다
우리민족 순국선열1호이신 명성황후님의 영혼과
순국선열 전체 영혼 거룩하시나이다
건청궁의 빛이시며
우리민족 대한민국의 빛이시며
영원한 별이시나이다
명성태황후와 광무고종태황제께서는
국력이 빛이고 에너지라고 여기셨나이다
아시아전력사와 조선제국전력사 대한민국전력사의 시초는
건청궁이며 명성태황후와 광무고종태황제이시나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명성황후는 조선제국의 해와 달
건청궁 붙박이별이시나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종황제는 조선제국의 빛이시며 에너지시며
조선제국 대한제국 대한민국 근대화의 시초를 만들어내신
조선왕조중 최고의 왕이시나이다
장충단 아리랑 / 정미애(지원)
남산 동쪽 봉우리 종남산 기슭아래
맑은 물 흐르는 계곡 경치 좋은 이곳에
간악하고 잔인한 일본에 의해
을미사변때 시해되신 명성황후님을 지키시려다
순사하신 충신들과 호위장졸들의 영혼을 배향하여
봄가을로 제사지내며 추모하기위해
대한제국 고종황제께서
장충단을 꾸미시고
위폐를 모시고
장충단을 세우셨나이다
순종이 황태자였을 때
장충단비를 바라보시며
장충단비의 장충단글자
직접 쓰셨나이다
순종이 황태자셨을 때
총칼로 위협하며
궁궐에 침입한 일본낭인들과 일본군대가
고종황제와 순종황태자 침실에 구둣발로 들어와
상투를 잡아 침소벽에 머리를 부딪히게 구타하고
어머니이신 명성황후를 지켜드리지 못하고
명성황후님을 목숨 바쳐 지키려고 하신
충신들과 호위장졸들
궁내부대신 이경직
군부대신 홍계훈
시종 임최수
참령 이도철
진남영 영관 염도희
무남영 영관 이경호
통위영 대관 김홍제
장위영 대관 이학승
진남영 대관 이종구
의 위패를 모신 장충단에서
얼마나 슬피 우셨겠나이까
명성황후께서 살해되시는 것을
목숨 바쳐 충성하신 충신들을 기리고자
장충단 3자를 쓰시고 어머니이신 명성황후님 생각에
뺨에 눈물이 물줄기 되어
가슴이 미어 쓰라렸을 것 같나이다
봄이면 소쩍새 울고
가을이면 단풍잎 물들고
돌아가신 충신들은
목소리도 없고
모습도 보이지않나이다
충성을 기리는 제단 장충단
고종황제께서는 대한제국 군악대의 연주속에
조총을 쏘아 대한제국의 이름으로
추모하셨나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장충단
순종황태자의 글씨이나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장충단
고종황제께서 세우셨나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장충단비 바라보며
나라 위해 살겠노라
충성을 다짐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