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27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듯이 한나라당이 금번 참패라는 결과를 내기까지는 결과에 합당한 씨가 이미 뿌려졌기 때문이란 얘기다.

대선공약의 불이행으로 인한 무너진 신뢰, 즉흥적 정책결정과 변경에 이어 밀어붙이기식 국정 운영, 고물가에 전세난 등이 대표적으로 밭에 뿌려진 씨다.

설상가상으로 부산저축은행 사건이 터졌다. 은행의 대주주와 임원들은 사전에 돈을 빼가게 하고, 평생을 허리띠를 졸라매며 먹고 입고 쓰고픈 것들을 참아가며 맡긴 서민들의 생명과도 같은 예금에 대해선 무대책으로 일관했다.

또 현직 국회의원들이 인출작업에 가담했다는 보도가 나오는가 하면, 은행업무의 부정과 비리를 감독하라고 세워 놓은 금융감독원은 감독은커녕 특혜인출사건의 중심에 서 있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형국이 되고 말았다.

결국 정치권에선 개인비리를 넘어 이같이 조직적 비리로 발전하는 금감원의 폐지 주장이 나오기에 이르렀으니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다 할 것이다.

여당의 안상수 대표는 ‘자연산’ 발언이며, 연평도 사건 후 현지답사를 하는 자리에서 플라스틱 병을 ‘포탄’이라 하는가 하면 입만 열면, 아니 가는 곳마다 무지로 말미암아 분란과 분열의 씨를 뿌리고 다녔음을 이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게다가 이 나라의 정책입안자들과 집행자들은 외려 자신들이 만든 법을 어기는 데 지금까지 솔선수범해 왔다. ‘정교분리(政敎分離)’의 원칙이 강령인 이 나라에서 이들은 ‘정교합일(政敎合一)’의 본을 보여 왔다는 얘기다.

기회만 되면 종교지도자 그것도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하나 되기를 원하고 나아가 도움 얻기를 원해 왔다. 그 결과 끊이지 않는 종교편향과 편파 시비에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해 왔음을 이젠 삼척동자(三尺童子)도 다 아는 사실이 됐다.

그 중심엔 늘 이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있었고, 또 여당 대표 안상수가 있었다. 난세와 난국의 주범임을 안다면 진정 원만한 국정을 위해 뛰고 또 뛸 시간도 없으련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국민들이 그렇게 싫어하는데도 틈만 나면 지역구인 경기도 과천의 교회 예배 및 행사에 참여해야 하는지를 다들 모르겠다고 한다. 결국 하늘은 그들에게 그 대가를 일차적으로 치르게 했음을 깨달아야 한다.

당․정․청은 위기 때마다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고상하고 거룩한 모션을 취해 왔다. 또 속으란 말인가. 오죽하면 6월 항쟁 때 등장했던 넥타이부대가 이번 분당을 재보선 선거에서 다시 등장했을까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아집과 고집과 교만의 정치, 거기에 맹목적 추종의 정치, 정당 안에 또 다른 정당과 색깔의 정당이 교합돼 국민들로 하여금 헷갈리게 하는 이상한 정치, 한 지붕 아래 있다고 하면서도 동상이몽(同床異夢)의 정당,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는 정치,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정당 특히 여당의 현주소다. 물론 정치는 정치적 목적이 없을 순 없다.

그러나 기본적인 규범이 있고 도리가 있고 국민에 대한 예의가 있을 것이다. 국민을 무시하고 배려하지 않는 한마디로 무식한 정치를 일관해 왔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선거 패배 후 눈치는 있어서인지 여당은 당내 지도부의 총사퇴로 위기를 수습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퇴로 해결 될 일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국민을 대표할 만한 자질을 의심받고 있는 것이며, 재직의 사퇴가 아닌 금뺏지를 내 놔야 할 것이다.

지난번 필자는 세종대왕의 리더십에 관해 언급한 바 있다.

그 가운데서 몇 가지 이들에게 다시 들려주고 싶은 대목이 있다. 세종대왕의 7가지 리더십 중 지적 리더십이다.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무식해선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그 해박한 지식은 자신을 교만하게 할 수 있으니 부단히 신하들과 지식을 공유하고 나눔으로 최선 내지 최상의 답을 얻어 낼 수 있으니 소통의 리더십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 소통의 리더십은 백성의 삶을 위해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어 냈다. 즉 창의의 리더십으로 이어지는 것이며, 이는 바로 하늘로부터 백성을 위해 보냄을 받았다는 소명(召命)의 리더십에서 기인된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말로는 국민을 위한다고 또 사랑한다고 하며 위민(爲民) 애민(愛民)을 외치지만 정작 그 안엔 잿밥만 꽉 차 있을 뿐임을 지적하는 내용이다.

결국 위민 애민이 아닌 하늘이 보낸 심부름꾼에 불과하다는 소명의식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이제 우리가 새로운 세계를 향해 발돋움하기 위해 진정 그와 같은 지도자들이 필요할 것이며, 또 이 시간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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