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저자

가황 나훈아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소크라테스(BC 470∼399)’를 소환했다. 나훈아는 추석 전야에 방송된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콘서트’에서 자신이 작사·작곡한 ‘테스 형’을 불렀다.

“아! 테스형 / 세상이 왜 이래 / 왜 이렇게 힘들어”

방송에서 나훈아는 소크라테스에게 ‘세상이 왜 이래’ ‘세월은 또 왜 저래’라고 물었더니 ‘자기도 모르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에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도 소크라테스를 소환했다. 21일에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서해 최북단 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됐다. 그는 30시간 표류 중에 22일에 북한군에게 사살돼 불태워졌다. 25일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안하다는 통지문을 보냈다. 이 소식을 접한 유 이사장은 ‘김정은을 계몽 군주’에 비유했다가 논란이 일었다. 그는 한 유튜브 방송에서 “계몽 군주 발언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 2500년 전에 아테네에 태어났으면 소크라테스를 고발했을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테스 형’을 부른 나훈아는 소크라테스 동생, 유시민은 계몽 군주 발언 해명으로 소크라테스가 된 셈이다.

연휴 때 플라톤이 지은 ‘소크라테스의 변론(천병희 옮김)’을 읽었다. BC 399년 봄에 시인 멜레토스와 민주파 유력 정치가 아니토스, 변론가 리콘은 소크라테스를 고발했다.

고발장은 이렇다. “멜레토스는 소크라테스를 상대로 다음과 같이 고발 함. 소크라테스는 첫째, 국가가 인정하는 신들을 믿지 않고 새로운 신들을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법을 어겼고, 둘째,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점에서 법을 어김. 구형은 사형.”

이 고발은 등에(쇠파리)가 말(馬)을 자극하듯이 아테네 사람에게 쓴소리하는 소크라테스에게 침묵을 지키고 조용히 살라는 협박이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캐묻지 않는 삶은 인간에게 살 가치가 없다”며 단호히 거부했다.

당시 아테네는 혼란과 몰락의 시기였다. BC 431년에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났다. 그런데 BC 430년에 아테네에 전염병이 돌아 4년간 30만명 중 8만명이 죽었고, 펠리클레스도 BC 429년에 죽었다.

27년간의 전쟁 끝에 아테네는 패전했다. BC 404년에 스파르타는 아테네에 30인 참주 정권을 수립했다. 참주 정권은 공포정치를 하며 민주파 시민 1500명을 죽였다. 이러자 시민들이 저항했고 BC 403년에 민주파가 참주를 몰아내고 민주정치를 회복했다.

소크라테스는 시민 법정에서 변론했다. 재판 결과는 배심원 501명 중 281명이 유죄를 선고했다. 형량 재판에선 360명이 사형에 표를 던졌다. 소크라테스는 탈출하라는 권유도 물리치고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그는 중우(衆愚)정치의 희생양이었고, 진실을 추구하다 순교한 철학자였다.

그러면 ‘소크라테스 변론’을 면밀히 살펴보자.

“아테나이인 여러분! 나를 고발한 사람들의 논리는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진실을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수많은 거짓말 가운데 가장 놀란 것은, 내가 언변에 능한 만큼 나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였습니다. 내가 언변에 능하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금방 반박당할 텐데 거리낌 없이 이런 주장을 한다는 것은 파렴치의 극치입니다.”

한마디로 아테네는 거짓말이 판치는 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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