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대사대리 (출처: 연합뉴스)
북한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대사대리 (출처: 연합뉴스)

공무원 피살 사건과 겹쳐 남북관계에 변수되나

최고지도자 사치품 구입 경로 아는 고위급 외교관

이미 1년 3개월 전 일, 별다른 영향 없으리란 관측도

청와대도 공개 대응을 자제하며 상황 관리에 주력 양상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지난 2018년 돌연 잠적했던 조성길 전 주(駐)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가 1년 넘게 국내에 체류 중인 것으로 7일 뒤늦게 확인됐다.

북한의 고위급 외교인사가 한국 망명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남북관계에 또 다른 변수가 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관심이 쏠린다.

아울러 북한이 어떤 반응을 내놓을지도 관심사인데, 북한군의 우리 공무원 피격 사살 사건에다 조 전 대사대리의 국내 체류 소식까지 터져 나와 자꾸만 꼬이는 남북 스텝에 청와대도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조성길, 1년 이상 국내 체류 사실 알려져

7일 정치권과 정보당국 등에 따르면 조 전 대사대리와 부인은 지난해 7월 극비리에 국내로 들어와 1년 이상 당국의 보호를 받으며 한국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정보위원회 야당 간사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도 조 전 대사대리가 부인과 함께 제3국을 거쳐 지난해 7월 국내에 들어와 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 등 관계부처는 관련 사실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조 전 대사대리는 북한에서도 뼈대 있는 ‘외교관’ 가문에서 태어나 평양외국어대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등 4개 국어에 능통한 그는 지난 2015년 5월 이탈리아 현지에 부임해, 2017년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을 이유로 이탈리아 정부가 문정남 당시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를 추방한 이후 대사대리를 맡았다.

주이탈리아 대사관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등 이른바 ‘백두혈통’의 요트, 와인 등 사치품을 공급을 담당해 북한에서도 중요한 재외공간으로 꼽혀 왔다.

그러다가 2018년 11월 초 임기 만료를 앞두고 돌연 행적을 감췄다. 구체적인 사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당시 북한 지도부가 요구하는 상납금 등 실적 압박에 시달렸다는 설과 반북 단체 ‘자유조선’이 그의 망명에 관여됐다는 설, 미국·영국 등 제3국으로의 망명을 타진 중이라는 등 추측이 난무했었다.

◆“남북관계 영향은 제한적일 듯”

‘대사대리직‘은 직급이 아니라 ‘임시 임무’다. 조 전 대사대리는 1등 서기관으로 앞서 국내에 망명한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전 주영국 북한공사)보다 직급이 낮다.

북한에선 대사가 공석일 때 그 하위 직급자한테 ‘임시대리대사’의 임무를 임시로 부여하는데, 어쨌건 지난 2011년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뒤 대사급 인사가 한국으로 들어온 것은 처음이이라는 점에서 남북관계도 적잖은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조 전 대사대리의 업무 특성상 북한 최고지도자의 사치품 구입망 등을 알고 있을 걸로 추정되는 만큼 북측으로서는 상당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행이 이미 꽤 시간이 지났다는 점에서 남북관계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처음부터 한국행을 선택하지도 않았고, 체류도 이미 1년 3개월 전 일인데다 그간 조용하게 지내왔다는 점에서다.

문성묵 한국전략연구원 통일안보센터장은 천지일보와의 통화에서 “그 사람이(조 전 대리대사) 적극적으로 북한 체제를 비난하는데 나섰다고 하면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줄 요소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으로 봐진다”면서 “극도로 조심하고 있고, 북한도 공개적으로 언급할 경우 김 위원장의 치부만 드러나는 꼴이라 공개적인 대응조차도 안 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도 통화에서 “물론 김 위원장의 비자금을 담당하는 사람(조 전 대리대사)이라 북한이 당혹스러울 순 있다. 앞으로 있을 남북 간 공개·비공개 접촉에서 걸고넘어질 가능성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지금처럼 조용하게 지낸다면 북한이 지난 7월 남북관계를 대적관계로 설정한 이상 더 나빠질 것은 없을 것 같다. 크게 영향을 줄만한 사안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3일 이탈리아 로마 남부에 위치한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관이 조성길 대사대리의 잠적과 서방 망명 타진설 속에 정적에 휩싸여 있다. (출처: 연합뉴스)
3일 이탈리아 로마 남부에 위치한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관이 조성길 대사대리의 잠적과 서방 망명 타진설 속에 정적에 휩싸여 있다. (출처: 연합뉴스)

◆靑도 향후 파장에 촉각

청와대는 이날까지도 조 전 대사대리의 국내 체류 소식이 알려진 데 대해 공식 입장을 자제하면서도 향후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습이다.

북한군의 공무원의 피격 사건에 이어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칠 민감한 사안이 잇따라 불거지자 공개 대응을 자제하며 우선 상황 관리에 주력하고 있다.

청와대는 민감한 외교안보 사안에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NCND·Neither Confirm Nor Deny)’ 기조를 견지하고 있다. 전날 저녁 언론보도 이후 국가안보실 차원에서 관련 지침을 관계 부처와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국내 여론과 북한의 반응을 조심스레 살피는 분위기다. 북한 군의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살 사건에 대한 야당의 공세로 국내 여론이 안 좋은 상황 속에 민감한 문제가 불거지자 상당히 곤혹스러워하는 양상이다.

한편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조성길이 만약 대한민국에 와 있다면, 딸을 북에 두고 온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려 우리 언론이 집중조명과 노출을 자제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만일 탈북 외교관이 대한민국에 와서 북한 김정은 정권에 반대하는 활동과 해를 가하는 발언 등을 하는 경우, 북한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는다”면서 “없는 범죄 사실도 만들어서 뒤집어씌우고, 심지어 테러 위협까지 가한다. 조성길 본인의 동의 없이 관련 사실이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것에 대한 유감을 표한다”고 덧붙였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공무원 이모씨가 북한군 총에 맞아 숨진 사건과 관련 청와대가 북한군의 사살 명령을 우리 군이 감청하고도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등의 의혹 제기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1일 오후 청와대 전경. ⓒ천지일보 2020.10.1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공무원 이모씨가 북한군 총에 맞아 숨진 사건과 관련 청와대가 북한군의 사살 명령을 우리 군이 감청하고도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등의 의혹 제기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1일 오후 청와대 전경. ⓒ천지일보 2020.10.1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