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박영희. (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20.10.5
독립운동가 박영희. (제공: 독립기념관) ⓒ천지일보 2020.10.5

‘김좌진 장군 부관으로 청산리전투 대승’

‘신민부 보안사령관, 성동사관학교 교관’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천지일보 천안=박주환 기자] 독립기념관(관장 이준식)이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박영희를 2020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전시회는 10월 한달간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에서 관련 자료 7점을 전시한다.

박영희(朴寧熙)는 1896년 충청남도 부여에서 태어났으며, 망명 후 만주에서 활동할 당시에는 박두희(朴斗熙)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고향에서 신명의숙을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휘문의숙을 다니던 그는 신명의숙 은사이자 훗날 신흥무관학교 교장을 역임한 이세영과 함께 1913년 만주로 망명했다.

이후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해 군사지식을 습득하고 졸업 후에는 신흥무관학교 교관에 부임했다. 1920년 박영희는 북로군정서 총사령관 김좌진의 부관 겸 사관연성소 학도단장으로 활동하며 독립전쟁을 이끌 정예군 양성에 매진했다.

박영희의 지도 아래 1920년 9월 사관연성소에서 배출한 300여명의 졸업생은 교성대(敎成隊)로 편입돼 북로군정서의 주력군으로 청산리전투에서 크게 활약했다. 박영희도 부관으로서 청산리전투에 참전하여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데 기여했다.

청산리전투 이후 박영희는 일본군의 추격을 피해 러시아로 이동했다가 자유시참변 이후 다시 만주로 돌아왔다. 1923년 무렵 북만주 소수분(小綏芬) 지역에서 학술강습소를 열어 독립군을 양성하고, 상하이에서 발행한 잡지 ‘배달공론’에 군사학강의를 연재하며 군사지식 보급에도 힘을 쏟았다.

1924년 대한독립군단에서 활동하던 그는 1925년 북만주 지역 독립운동 단체를 통합한 신민부가 조직되자 보안사령관을 맡아 군사부 위원장인 김좌진을 보좌했다. 또한 신민부 산하의 독립군 양성기관인 성동사관학교 교관으로 활약하며 신민부 군사조직에 필요한 핵심 인재 양성에도 기여했다.

그밖에 친일인사 처단, 국내진입작전을 위한 특수부대 파견에도 가담한 박영희는 군자금 모집을 위해 러시아에서 활동을 펼치다 1930년 순국했다. 정부는 독립군 양성과 무장투쟁에 헌신한 그의 공훈을 기리며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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