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와당연구가

‘아황(阿皇)’이란 글자가 새겨진 와당으로 지안 국내성 유지 안에서 출토된 것이다. 글자는 반듯한 정서(正書)이며 고구려에서 유행했던 예서체다. ‘아황(阿皇)’이란 무슨 뜻일까. ‘阿’는 본래 크다는 것을 지칭한 것으로 황자 앞에 이 글자를 붙이면 큰 황제라는 뜻이다.

중국 측 사료를 찾아보면 ‘阿’는 관명으로도 사용됐으며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이 지은 아방궁도 ‘아황궁(阿皇宮)’으로 불렸다고 한다. (又宮名。《史記·秦始皇紀》 先作前殿阿房。《註》括地志云:秦阿房宮,亦曰阿城,在雍州長安縣。一云阿,近也,以其去咸陽近,故號阿房)

불가에서는 팔부신중(八部神衆) 가운데 하나인 수호신을 아수라(阿修羅)라고 불렀다. 화랑세기를 발굴한 고(故) 박창화의 남당유고(南堂遺稿)에 “신라 미추왕을 ‘아황(阿皇)’이라고 했으며 점해왕은 수황(秀皇), 유례왕은 연황(軟皇)이라고 호칭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아황 명문 삼존불와당 앞면 (제공:이재준 와당연구가) ⓒ천지일보 2020.10.7
아황 명문 삼존불와당 앞면 (제공:이재준 와당연구가) ⓒ천지일보 2020.10.7

이 와당은 중앙에 여래입상을 주존으로 삼고 양옆으로 협시보살을 두었다. 삼존불은 고구려 시대 유행한 불상으로 연가7년명 금동불상, 계미명 금동삼존불, 신묘명금동삼존불, 청주비중리 석조일광삼존불 등 유례가 조사된 바 있다. 삼존불을 모시는 법당을 대웅보전이라고 지칭한다. 그렇다면 이 와당은 궁궐 내 황실 경영의 대웅전 지붕 옥개용으로 제작됐던 것인가.

이 와당의 본존불 상호는 매우 후덕하며 입가에 미소가 완연하다. 큰 상투를 가진 나발의 머리에 얼굴은 크고 눈두덩이 두껍게 표현돼 있다. 수인(手印)은 여원시무외인을 했으며 양 귀는 길게 표현돼 어깨에 닿고 있다. 하관은 살이 쪄 원만한 인상을 주고 있다.

아황 명문 삼존불와당 앞면 (제공:이재준 와당연구가) ⓒ천지일보 2020.10.5 ⓒ천지일보 2020.10.7
아황 명문 삼존불와당 앞면 (제공:이재준 와당연구가) ⓒ천지일보 2020.10.5 ⓒ천지일보 2020.10.7

재미나는 것은 목 부분에서 양옆으로 길게 한 가닥의 꿈틀대는 양각의 선문이 표현돼 있는데 이는 영기문(靈氣紋)으로 해석된다. ‘아황’이란 명문은 바로 영기문 위에 자리 잡고 있다. 글씨체는 광개토대왕릉비에서 보이는 예서체다.

법의는 통견(通肩)으로 하단에 이르러 U자형을 이루고 있다. 아래 의문은 양옆으로 날카롭게 뻗쳐있어 고구려 불상에 보이는 통식을 보여 준다. 협시보살은 앙련좌(仰蓮座) 위에 안치된 입상으로 매우 해학적인 표정을 하고 있다.

경 15.5㎝, 주연폭 1.5㎝, 두께 3.5㎝, 본존불고 12㎝ 협시불고 5.5㎝ 자경(字徑) 2㎝. 적색이며 모래가 섞인 경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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