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충사의 충무공이순신기념관에 전시된 선조임금이 충무공 이순신에게 보낸 기복수직교서.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선조 임금이 충무공 이순신에게 잘못된 정책을 한 것에 대한 후회가 담긴 사과문을 발송한 것이 일반인에 공개됐다.

선조가 충무공에게 삼도수군통제사 교서로 내린 ‘기복수직교서’가 지난 27일 보물로 지정돼 28일 개관한 천안 아산 현충사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에서 일반인에 공개됐다.

이 교서는 칠천량 해전 후 모친 상 중에 있는 이순신에게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해 내린 것으로 선조의 심정이 잘 담겨 있다.

교서에는 선조가 이순신에 대해 내린 잘못된 정책에 대한 후회와 함께 다시 수군을 맡아 왜군의 공격에서 나라를 건져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적혀 있다.

“임진년 승첩이 있은 뒤부터 업적이 크게 떨치어 변방군사들이 만리장성처럼 든든히 믿었는데 지난번에 그대의 직할을 갈고 그대로 하여금 백의종군하도록 하였던 것은 역시 사람의 모책이 어질지 못함에서 생긴 일이었거니와 그리하여 오늘날 이같이 패전의 욕됨을 만나게 된 것이라.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선조가 이순신을 갈고 원균으로 하여금 수군을 이끌게 한 자신의 정책이 과오였음을 토로하고 있는 내용이다. 1597년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 목숨을 잃게 되자 후회를 담아서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기복수직교서의 기복이란 기복출사의 준말로 나라의 필요에 의해 상제의 몸으로 상복을 벗고 벼슬자리에 나오게 하는 일을 말한다.

효를 중요시한 조선시대에 상례는 더욱 엄격해 부모가 돌아가시면 상주가 묘소 아래서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는 풍습도 있었다.

선조임금으로부터 기복수직교서를 받을 당시 충무공 이순신은 모친 상중에 있었다. 이를 통해서 상중에 있는 이순신을 불러낼 정도도 당시 전세가 급박한 상황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선조임금은 “이제 특히 그대를 상복을 입은 채로 기용하는 것이며 또한 그대를 평복 입은 속에서 뛰어 올려 도로 옛날같이 전라좌수사 겸 충청전라경상 등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한다”고 교서에서 전하고 있다.

이 교서는 칠천량의 패전 소식이 전해지고 그 대책회의를 연 다음 날인 7월 23일 작성됐고, 연안의 패전을 수습하기 위해 나선 이순신에게는 열흘 후 진주의 수곡에서 전달됐다.

왕의 말이 곧 하늘의 말이었던 당시 국가 상황에서 선조임금의 이 편지는 오늘날에도 귀감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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