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역 곳곳의 역사를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흔하게 역사 교과서 등에서 볼 수 있는 주제가 아닌,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지역을 지켜줬던 과거의 흔적들을 찾아보는 시간이 됩니다. 이 글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알고 이곳에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음을 다시금 감사하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진도군 의신면에 있는 왕온의 묘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진도군 의신면에 있는 왕온의 묘

◆ 여몽연합군 vs 삼별초

진도로 내려온 삼별초는 용장성(龍藏城)을 거점으로 삼고 자신들이 고려의 정통임을 주장했다. 용장성은 둘레 13㎞의 산성으로 개경의 궁궐과 비슷한 모습을 갖췄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원종을 고려의 국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다른 왕족이었던 승황후 온을 새 국왕으로 옹립했다. 결국 고려에는 원종의 개경정부와 삼별초의 진도정부가 세워져 대립하게 됐다.

정예부대였던 삼별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남해안 일대를 장악해갔다. 전라도의 장흥·보성·나주·전주 등을 점령해 무기와 곡식을 확보하고, 경상도까지 진출해 가장 큰 섬이었던 거제도를 점령하면서 동래까지 나아갔다. 또 후방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제주도까지 확보한다.

삼별초는 여몽연합군과의 싸움에서 여러 차례 이기면서 개경정부를 위협했다. 그러나 1271(원종 12)년 5월 홍다구와 몽골 장수 흔도가 이끄는 싸움에서 배중손이 전사하고 왕으로 옹립됐던 승화후 온이 참수되면서 진도정부는 붕괴되고 말았다. 하지만 일부의 삼별초는 김통정의 지휘 아래 진도를 빠져나와 제주도로 거점을 옮겨 항몽전쟁을 이어나갔다.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진도군 군내면에 위치한 용장산성 홍보관
[천지일보=이예진 기자] 진도군 군내면에 위치한 용장산성 홍보관

◆ 또 하나의 고려였던 진도

지난 1989년 일본 NHK는 ‘수수께끼의 괴문서’에서 <고려첩장불심조조>에 대해 방송했다. <고려첩장불심조조>는 일본이 기록한 문서로 1268년과 1271년에 고려가 일본에게 보낸 문서 중 의문점이 있는 부분들을 정리한 내용이다. 이 내용을 보면 당시 일본은 개경정부와 진도정부를 구분하지 못하면서 나타난 이상한 부분들이 나타나는데, 1268년에 고려가 보낸 문서에 보면 몽골에 대한 사대 표현이 적혀있는 반면 1271년의 문서에는 몽골을 야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로써는 고려가 보낸 문서의 원본이 없어 정확한 내용의 확인은 불가하나 일본의 입장에서 정리한 내용을 봤을 때 진도정부가 국가의 형태를 갖춰 대외적인 활동까지 수행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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