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역사] 세계문화기행_프랑스 (1)
[사진으로 보는 역사] 세계문화기행_프랑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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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센강과 노트르담 대성당의 야경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10.3
파리의 센강과 노트르담 대성당의 야경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10.3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문화와 예술, 낭만이 흐르는 곳 프랑스 파리.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과 노트르담 대성당은 파리만의 상징을 뛰어넘어 프랑스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에펠탑의 경우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특별히 세워진 건축물로 전 세계인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건축물 중에 하나로 손꼽힌다.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는 프랑스혁명 100주년(1789~1889)을 기념해 프랑스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한 행사다. 19세기 일어난 만국박람회의 열풍은 국가 간 산업 경쟁의 대표적인 장이었다. 동시에 19세기 건축에 내재된 경쟁 구도가 드러난 장이기도 했다. 각국의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은 만국박람회를 통해 자신들의 경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자리였으며, 세계 각국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였다.

에펠탑을 설계한 건축가 구스타프 에펠(Alexandre Gustave Eiffel, 1832∼1923)도 그들 중 하나로 결과적으로 만국박람회를 통해 그 이름을 널리 알린 셈이다.

우리나라 역시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참가하긴 했으나 본격적으로 참여한 것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다. 당시 대한제국은 근정전 모습의 전시관을 건립하고 민영찬을 위원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파견했으며,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홍보하는 기회가 됐다.

이번에 소개되는 사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단연 프랑스 파리의 상징 에펠탑과 그 건립 배경이 된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 당시의 모습이다.

이외에도 대한제국 당시 정동 일대 돈의문(서대문) 인근에 세워진 프랑스공사관의 모습이 담긴 사진도 만날 수 있다. 지금은 그 흔적조차 남지 않은 프랑스공사관의 외관을 멀리서나마 볼 수 있는 사진이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로 잘 알려진 노트르담 대성당의 야경이 센(Seine)강과 어우러져 운치를 더하는 사진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넓은 평지의 파리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몽마르트 언덕과 그 위에 세워진 예수 성심 대성당(사크레쾨르 대성당: Basilique du Sacré-Coeur)의 모습도 볼 수 있다.

 

환등기와 에펠탑이 찍힌 유리원판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10.3
환등기와 에펠탑이 찍힌 유리원판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10.3

환등기와 에펠탑이 찍힌 유리원판 

1세기 전 합성수지(플라스틱)로 제작된 흑백필름이 나오기 전까지는 유리원판 필름을 사용했다. 유리원판 필름은 인화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대중적이었으나 선교사업 등을 목적으로 슬라이드 방식으로 제작된 필름도 있었다. 슬라이드 방식은 영상 교육용으로 사용하던 것으로 환등기를 통해 볼 수 있다.

사진 속 환등기와 다수의 유리원판 그리고 프랑스의 상징인 에펠탑이 보이는 유리원판 필름이 마치 10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준다. 


 

파리의 센강과 노트르담 대성당의 앞모습을 담은 컬러 사진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10.3
파리의 센강과 노트르담 대성당의 앞모습을 담은 컬러 사진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20.10.3

파리의 센강과 노트르담 대성당의 앞모습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노트르담 드 파리 대성당(Cathedral of Notre-Dame de Pari)은 프랑스에서 가장 훌륭한 성당 중 하나이자 국가 행사가 개최되는 곳이다. 고딕 양식의 이 로마 가톨릭 대성당은 프랑스 파리의 대표적인 랜드 마크가 됐으며, 사람들에게는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의 1831년 작 ‘노트르담의 꼽추’로 인해 더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파리의 센(Seine)강과 그 뒤로 보이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뒷모습이 야경과 어우러져 그 운치와 고즈넉함을 더한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앞모습은 흔히 볼 수 있지만 뒷모습을 담아낸 사진은 흔치 않다. 대성당의 뒷모습과 앞모습을 비교하기 위해 앞모습이 찍힌 컬러 사진을 함께 공개한다.

한편 노트르담 대성당이 서 있는 곳에는 원래 주피터 신에게 바치는 로마 지배의 갈리아 시대 신전이 있었다. 이후 파리 최초의 기독교 교회인 ‘생-테티엔 바실리카’가 들어 선 후 파리의 주교 모리스 드 쉴리의 감독 아래 이전 교회를 허물고, 1163년 새로운 교회의 건축이 시작됐다.

건물은 1345년 완공된 이후 수세기 동안 수정돼 왔으나 시간이 흘러 1793년 무렵에는 대성당의 중요성이 외면당했으며, 이 시기 동안 대부분의 조각상과 세공이 파괴되고 종교 유물들은 녹여졌다. 심지어 대성당은 식량 저장 창고로 전락하고 말았다.

1801년 노트르담은 교회로 다시 축성을 받았지만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헐릴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의 꼽추’는 당시 심하게 파손돼 헐릴 위기에 처한 이 성당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집필한 것으로도 알려졌으며, 그의 의도대로 성당을 살리자는 캠페인이 일어났으며 1845년에는 복원작업이 시작됐다.

이 사진을 보고 있으니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가 떠오르며 뮤지컬 넘버 중 하나인 ‘대성당들의 시대’가 떠오른다.

“대성당들의 시대가 찾아왔어. 이제 세상은 새로운 천년을 맞지. 하늘 끝에 닿고 싶은 인간은 유리와 돌 위에 그들의 역사를 쓰지 (중략) 대성당들의 시대가 무너지네. 성문 앞을 메운 이교도들의 무리. 그들을 성 안으로 들게 하라. 세상의 끝은 이미 예정되어 있지. 그건 이천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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