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민족 대이동이라 불리는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 이번주다.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여기저기서 집단감염이 발생하고 무증상 감염사례가 많이 나와 방역 당국이나 국민 모두 긴장하며 맞이하고 있다. 일부는 정부가 강제력을 발휘해 추석 이동을 금지해 달라고 하지만 ‘이동금지령’을 내릴 때 발생할 반발은 정부도 감당하기 어려워 현실성이 없다.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으려면 스스로 코로나19 시대 슬기로운 추석 보내기를 실천하는 방법 외에 없다.

정부의 추석 이동 자제 권고로 작년에 귀성했던 국민 중 약 60%가 귀성하지 않기로 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생각했는데, 제주도, 강원도 등 관광지 숙박업소가 때아닌 호황을 누리며 객실이 만실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추석에 귀성을 자제해달라는 권고는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이동하며 동선이 겹치고, 확진자가 다녀간 동네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는 우려를 차단하려는 목적인데 귀성은 포기하며 많은 사람이 몰리는 관광지를 가는 건 슬기롭지 못하다. 이대로라면 추석 연휴 뒤 확진자가 일일 1천명에 달할 거라는 우려도 허황한 수치는 아니다.

통계적으로 추석, 설 등 명절이 지난 후 이혼율이 올라간다는데 올해 추석 뒤끝은 더 올라갈 거 같다. 코로나19로 대부분 귀성을 포기하는데 집안 가풍을 내세우며 귀성을 요구하는 시댁과 며느리의 갈등이 부부 간 갈등으로 비화할 게 뻔하다. 조선 시대에도 나라에 역병이 돌 때는 차례와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고 한다. 조상에 대한 예보다 사람 간의 접촉 기회를 최대한 줄여 역병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옛 선조들처럼 코로나19라는 역병이 도는 올해는 차례를 지내지 않는 슬기로움을 부모가 자식에게 보여줘야 한다.

올해 벌초는 벌초 대행에 맡기고 친척들이 모여 하는 벌초는 삼가야 한다. 필자도 매년 형제들이 모여 해오던 벌초를 올해는 벌초 대행에 맡겼다. 조부모 묘소는 작년에 개장 후 화장해 묘소를 없앴다. 벌초 문화는 우리 세대에 끝내야 한다고 형제들끼리 합의가 된 덕분이다. 오래전 벌초에 동행해달라는 나의 요청을 거부하던 대학생 아들과 다퉜던 기억이 난다. 벌초나 증조부란 개념조차 없던 아이에게 그런 문화를 강요했던 내가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었다. 우리처럼 증조부, 고조부 묘소를 친척들이 모여 벌초하는 문화가 자식 대에서 지속하지 않을 게 뻔하다면 우리 대에서 조상의 묘를 정리하고 떠나는 게 슬기롭다.

작은 결혼식, 간소한 장례식, 명절 거부 문화가 확산해 가는 이유는 젊은이들의 합리적인 사고방식과 맞지 않고 시대에 뒤떨어지기 때문이다. 명절도 40~50년 전 일가친척이 한 동네에 모여 살던 시대에서나 미풍양속이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 명절을 지내기 위해 대부분 국민이 한날한시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이동하는 자체부터가 엄청난 낭비다. 중국 춘절 대이동 때 수억명이 뒤엉켜 이동하는 걸 비웃으며 정작 우리는 그런 문화를 없애려고 하지 않는다. 돈과 시간과 정성을 들인 명절이 행복하다면 지켜나가야 할 문화가 맞지만,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비율이 과반을 한참 넘는 게 현실이라면 명절을 좀 더 슬기롭게 지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예전에 휴가철이 8월 1일~5일에 집중됐던 시대가 있었다. 동해안 가는데 10시간이 넘게 걸려 고생한 기억이 난다. 모두가 불편하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져 지금은 휴가가 분산돼 이동하는 고생이 줄었다. 부모님을 봬야 한다면 굳이 명절이 아니어도 되고 조상에 대한 예를 올릴 거라면 지금 시대에는 온 식구가 한날한시에 모여 할 필요도 없다. 조상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간소한 음식을 차려 식구들끼리 덕담을 나누는 데 의의를 두고 ‘홍동백서, 조율이시’ 등 시대에 맞지 않는 차례상 차리기 문화는 이젠 버려야 한다. 조상이 피자, 치킨을 좋아하실지 어찌 아나?

수백년 동안 중국에서 건너온 차례, 제사 문화를 지키려고 어머니, 며느리, 딸들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생각해보자. 전통도 시대가 변해 불합리한 관습으로 여겨진다면 시대에 맞게 바꿔 나가는 것이 현명하다. 조상을 모시는 명절에 여자인 엄마, 며느리만 음식 준비하고 남자는 TV보다가 잔칫상 받는 건 옳지 않다. 심지어 며느리만 음식 준비하게 하는 집은 몰상식하다. 며느리는 내 아들과 사는 귀한 남의 집 딸이라 생각하며 존중해야 한다. 명절은 부모, 자식, 며느리, 사위 모두 행복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명절이 스트레스를 받고 불행한 날이라면 슬기로운 방식으로 바꿔 나가야 제대로 가풍이 선 집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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