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스님의 종교산책 21회차] ‘여성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 삶과 죽음 조명
[혜원스님의 종교산책 21회차] ‘여성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 삶과 죽음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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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이지솔 기자] ‘혜원스님의 종교산책’ 제21회가 28일 천지TV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이날 방송은 유관순 열사 서거 100주기를 맞아 특집으로 진행됐다. 

1920년 9월 28일. 이날은 유관순 열사가 열여덟 어리고 여린 여성의 몸으로 입에 담지 못할 치욕스럽고 잔인한 고문을 이겨내야 했던 100년 전 오늘이다. 그녀는 석방 이틀을 남겨놓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유 열사는 1902년 충청남도 천안에서 신실한 개신교 집안 둘째 딸로 태어났다. 열사라 함은 나라를 위해 절의를 지키며 충성을 다해 싸운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1910년 일제 식민지배 아래 나라 잃은 슬픔마저 자유롭지 못할 때, 유 열사는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는 유교적 문화와 기독교 신앙 속에서 자유와 평등사상의 영향을 동시에 받으며 자랐다.

1915년 4월. 서울 이화학당 보통과 2학년으로 편입한 그는 1918년 4월 고등과 1학년에 진학하게 된다.

유 열사가 살았던 지역은 서양문명이 전래되던 전초기지였고, 충남의 대표적 문물교류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유 열사는 많은 외국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유 열사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적 환경 속에서 자유와 독립, 애국의 중요함을 깨달았고, 그로 인한 깨달음과 믿음 또한 남달랐다. 유 열사의 이 같은 깨달음은 3.1운동으로 꽃피게 된다. 이후 4월 1일 아우네 장터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 헌병대에 잡혀 법정으로 끌려간다.

1919년 5월 9일. 그 때 당시 여성으로써 최고형인 7년형을 선고 받았지만, 법정에서 의자를 집어 던지며 독립의지를 꺾지 않았던 유 열사의 모습은 같은 동지뿐 아니라 일본인들까지 놀라게 했다. 유 열사는 일본의 모든 재판권을 부정하고 판결을 거부한 유일한 여학생으로 남게 된다.

이후 1920년 3월 1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중만세 운동을 주도한 이유로 고문을 받고 9월 28일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3.1독립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지났으나, 유 열사의 독립투쟁과 애국정신은 오늘날의 세계 모든 젊은이들이 배우고 실천해야 할 대목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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