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운주장막(運籌帳幕)
[고전 속 정치이야기] 운주장막(運籌帳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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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춘추시대 초기에 이미 세력이 약화된 주왕실은 2등급의 제후국에 불과했다. 천하공주(共主)는 허명이었다. 반대로 제후국의 세력은 신속히 팽창했다. 경제발전에 따라, 타국을 병탄하려는 제후의 욕망은 더욱 강해졌다. 주로 쟁패전이 벌어진 황하하류에서 대국은 정(鄭), 송(宋), 위(衛), 노(魯), 제(齊) 등 5개국이었다. 최초의 강자는 정이었지만, 장공 사후에 내란으로 약화됐다. 강자가 사라지자, 혼전이 벌어졌다. 기회를 노린 이민족 적(狄)과 융(戎)이 침략했다. 각국은 내전을 절제하고, 연합을 주도할 패주가 필요했다.

관중은 환공을 패주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총체적 방략은 ‘존주친린(尊周親鄰)’이었다. 군사, 외교를 통해 제후를 제압하고, 천자를 대신할 모양새를 갖추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내정안정이 우선이었다. ‘창고가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풍족해야 영욕을 안다(倉廩實則知禮節, 衣食足而知榮辱)’는 표어를 내세웠다. 인재 선발을 위해 서민의 지위를 격상시키고, 개혁을 추진할 중앙관제를 수립했다. 제는 신속히 강국으로 변했다. 외부팽창을 위해 선린외교를 강화하고, 덕으로 천하를 복종시킨다는 책략을 제시했다. 제의 국경을 확정하기 위해 점령한 땅을 돌려주었다. 제후국과 적극적 경제교류를 위해 관세와 시장세를 철폐했다. 관중은 제후국끼리의 모순이 악화되면 복잡한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반복무상한 현상이 드러나면 오늘의 맹방이 내일은 원수가 될 수도 있다. 강자가 약자를 능멸하고, 대가 소를 기만하며, 속임수가 판을 치고, 신의를 경시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제가 패자를 자처하려면 덕과 의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무력을 과시해야 한다. 계모로 정벌하고, 장막 안에서 주판을 다루는 것은 정치적 과업이었다.

BC 684년 겨울, 제는 대외적 용병을 개시해 서북쪽의 소국 담(譚)을 공격했다. 환공에게 불손했다는 이유였다. 담의 군주는 거(莒)로 도망쳤다. 제는 담을 정벌하고도 소유하지 않았다. 소국들은 제의 인(仁)을 믿고 무(武)를 두려워했다. 2년 후에는 송의 내란평정을 명분으로 회맹을 주도했다. 남쪽의 소국 수(遂)는 불참을 이유로 소멸시켰다. 수는 노의 북방에 있었다. 위협을 느낀 노는 제가 연으로 출병할 때 병력지원을 거절했다. 그러나 관중은 덕을 보여주기 위해 ‘안노(安魯)정책’을 시행하고, 노가 초의 연합을 방지했다. 노장공도 감사해했다. 양국 관계가 개선됐다. 이로써 패업 실현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패업을 칭할 무렵에도 제후들의 화합과 협조가 완전하지 않아 크고 작은 무력충돌이 발생했다. 불복하는 제후를 정벌해 패업을 다질 시간이 필요했다. 제의 위망이 증강되자, 초와 연합한 제후국들이 제에 복종했다. 중원진출을 노리던 초는 잇달아 정을 공격해 중원에서 세력을 강화하는 제에 타격을 가했다. 환공은 제후들을 연합해 정을 구하고 초를 치기로 했다. 당시의 조건에서 자기의 전략을 은폐하고 초를 미혹시키려면 불의의 공격이 필요했다. 마침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제의 우방 채(蔡)의 군주는 여동생을 환공에게 시집보냈다. 채희가 뱃놀이를 하다가 환공을 놀렸다. 환공은 그녀를 친정으로 돌려보냈다. 모욕을 느낀 채후는 채희를 초의 성왕(成王)에게 보냈다. 관중은 채를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초와 전쟁을 추진했다. 그러나 채를 정벌한 후 정보가 누설되자, 관중은 방략을 바꾸어 초와 담판을 펼쳤다. 천하의 대세와 대의를 앞세워 설득하자, 초는 싸우지 않고 복종했다. 관중이 앞세운 대의는 초가 2년 동안 천자에게 청모(菁茅)를 바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청모는 긴 띠풀로 초가 주왕실에 관례적으로 바친 일종의 특산식물이다. 압력을 받은 초는 죄를 인정했다. 결국 초는 하남성 언성현(郾城縣)인 소릉(召陵)에서 제와 맹약을 체결하고 함께 천자를 받들며 우호관계를 유지하기로 했다. 패업은 관중의 운주장막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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