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빈에서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한 베토벤에게 뜻밖의 시련이 닥쳤으니, 20대 중반부터 청각에 문제가 발생하더니 후반에 이르러서는 청각이 마비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당시 장래가 촉망되던 베토벤에게 작곡가(作曲家)로서 청각 마비는 치명적인 문제였는데, 그는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자존심이 상했으며 더할 수 없는 불안과 무력감에 빠졌다.

그래서 베토벤은 그러한 병이 발생한 이후 해마다 여름이면 빈 교외의 하일리겐슈타트라는 마을에서 지내면서 귓병 치료에 힘을 기울였다.

사실 베토벤은 청각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여러 해 동안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그는 이러한 병을 주위에서 눈치 채지 않게 하기 위하여 사람들까지 피했다고 하니 당시 그의 심리적인 압박감이 얼마나 컸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1801년 그의 친구인 의사 베겔러에게 자신이 청각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말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실 나는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 약 2년 전부터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피해 왔네. “나는 귀머거리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네. 만일 내가 다른 직업을 가졌다면 어떻게 해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내 직업으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으니 이것은 무서운 노릇이 아닐 수 없네.

내 적들이 이 사실을 아는 날이면 도대체 무어라고 말하겠는가. 더구나 그들의 수는 적지 않으니 말이네. 나는 극장에 가서 배우들의 대사를 알아들으려면 오케스트라 석 바로 옆에 자리 잡아야 하네. 조금만 떨어져도 악기나 음성의 높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단 말일세.

낮은 소리는 가까스로 알아들을 수 있지만 높은 소리는 아무래도 알아들을 수가 없네. 나는 자신의 존재와 조물주를 여러 번 저주했었네. 플루타크가 나를 체념으로 인도하여 주었네. 가능하다면 나는 자신의 운명에 도전하고 싶네. 그러나 나는 자신이 신이 창조한 가장 비참한 인간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자주 있네.

체념! 그것은 얼마나 슬픈 피난처란 말인가!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 남겨진 유일한 피난처이네.]

베토벤은 베겔러에게 보낸 편지를 통하여 청각 마비로 인한 자신의 고통을 말하면서도 한편으론 이를 극복하고 싶은 의지를 표명하나 그런 가운데서도 그 의지마저도 체념하고 싶을 때가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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