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5개 중견국(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 터키, 오스트레일리아) 협의체인 믹타(MIKTA) 의장국 자격으로 유엔 75주년 기념 고위급회의 대표연설을 영상으로 전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5개 중견국(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 터키, 오스트레일리아) 협의체인 믹타(MIKTA) 의장국 자격으로 유엔 75주년 기념 고위급회의 대표연설을 영상으로 전하고 있다.

文, 75차 유엔총회 연설서 ‘한반도 종전선언’ 공식화

전문가 “北요구, 북미대화 조건에 부합” vs “일방적 발표”

다자 방역 협력 제안엔… “北, 협력할 수도” vs “관심 없어”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연설에서 택한 키워드는 ‘한반도 종전선언’이었다. 2년여만에 다시 꺼내든 셈인데, 북미 간 의제였던 종전선언을 국제사회에 역설하는 등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우리 정부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11월 미국 대선 등을 감안하면 북미대화 재개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한 만큼 손 놓고 있기보다는 남북관계를 주도적으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구상도 엿볼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남북 방역협력 제안을 넘어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함께하는 방역·보건 협력체 참여를 통해 북한이 안보를 보장받는 방안까지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고리로 내걸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란 전 세계적 위기 속에서 다자주의에 입각한 국가 간 연대와 협력만이 살 길이란 점을 지적하는 등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내겠다는 시도지만, 정작 당사자인 북한이 호응해올지는 미지수다.

◆“종전선언, 비핵화 평화체제의 문”

문 대통령은 이날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5차 유엔총회 화상연설을 통해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4년 연속으로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다만 올해 유엔총회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화상회의로 진행됐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통해 화해와 번영의 시대로 전진할 수 있도록 유엔과 국제사회에 힘을 모아 달라고 호소했다. 종전선언 문제를 유엔과 국제사회 차원의 의제로 공식화 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반도에 남아있는 비극적 상황을 끝낼 때가 됐다”며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보장하고, 나아가 세계질서의 변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이날 천지일보와의 통화에서 관련 질문에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제안한 것은 북한이 요구했던 북미대화 조건에 부합하는 것”이라면서 “지난 7월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당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북미 간 대화 조건으로 이전과는 달리 대북 적대시정책을 철회해 달라는 것이었다”고 답했다.

이어 “문제는 ‘북한이 요구하는 적대시정책 철회가 무엇이냐‘가 쟁점인데, 그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 등이 얘기했던 코로나19 관련 인도적 지원 등은 북한이 대화에 나서기 어려운 조건이었다”면서 “결국 우리 정부는 북한이 적대시정책 철회로 볼 수 있는 부분을 종전선언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 카드를 다시 꺼내든 이유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조 연구위원은 “종전선언이 법적구속력을 가진 합의라기보다는 가역적이고 정치적·상징직 선언이라는 점도 또 다른 근거가 될 수 있다. 고민 끝에 나왔다고 볼 수 있는데,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통화에서 “종전선언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출발점이라는 건데, 문 대통령은 이를 계기로 그 의미를 다시 상기시키고 의지를 다지는 기회로 삼고자 했던 것 같다”면서도 “어떤 정책을 세우거나 공표할 때면 실효성이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 센터장은 “미국이나 북한 모두 이 문제에 시큰둥한 반응인데, 쉽게 볼 수 없는 사안”이라며 “문 대통령조차도 제안은 했지만,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범철 한국전략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도 “일단 종전선언의 실현 여부보다는 국제사회에 우리 정부의 입장을 피력했다고 본다”면서 “특히 외교정책이 실현 가능하기 위해선 상대방의 호응이 절대적인데, 미국과 북한의 답이 없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발표한 부분은 부적절했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 센터장은 선결돼야 할 비핵화 문제를 제쳐두고 종전선언만을 언급하면, 자칫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북한이 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재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무국회의를 열었다고 조선중앙TV가 6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활짝 웃는 가운데 뒤쪽에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액자가 눈길을 끈다. (출처: 연합뉴스)
북한이 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재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무국회의를 열었다고 조선중앙TV가 6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활짝 웃는 가운데 뒤쪽에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액자가 눈길을 끈다. (출처: 연합뉴스)

◆남북 방역협력 거듭 제안… 이번엔 북한 반응할까

문 대통령은 3.1절, 판문점 선언 2주년, 취임 3주년 등 계기가 있을 때마다 북한을 향해 코로나19 방역 협력을 제안해왔는데, 이번 유엔 연설에서도 남과 북은 ‘생명공동체’임을 강조하며 방역 협력을 또다시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남과 북은 감염병과 자연재해에 함께 노출돼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함께 협력할 수밖에 없다”며 “방역과 보건협력은 한반도 평화를 이루는 과정에서도 대화와 협력의 단초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북한의 방역 전략은 ‘협력’이 아니라 ‘봉쇄’다. 수해든, 코로나19든 외부 지원마저 단절하는 방식으로 ‘완벽한 봉쇄망’을 갖추겠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그래서 문 대통령이 이번에는 북한의 최대 관심사인 ‘안전 보장’을 내세웠는데 바로 남북한과 중국, 일본, 몽골이 참여하는 ‘동북아시아 방역·보건 협력체’ 구상을 제안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19 이후 한반도 문제 역시 포용성을 강화한 국제협력의 관점에서 생각해주길 기대한다”면서 “여러 나라가 함께 생명을 지키고 안전을 보장하는 협력체는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다자적 협력으로 안보를 보장받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당사자인 북한이 관심을 가질법하지만, 문 대통령의 제안에 당장 호응해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신 센터장은 “북한은 전혀 관심이 없다. 우선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고, 또 노동당 창건 75주년인 내달 10일까지는 수해복구를 비롯한 내치에만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문재인 정부가 남은 임기 내 뭔가를 해보려고 하는 건 좋은데, 내용을 보면 정책의 실효성보다는 방향성만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상대방 측에게 무시당할 염려 등 간과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 센터장은 “다자 구상이라는 게 아이디어는 좋다. 문제는 북한을 끌어들일 수 있느냐는 것”이라며 “북한의 그간의 행태를 보면 코로나19 대응이든 뭐든 반응을 보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북한은 우리 정부에 대한 실망과 불만을 갖고 있는데다 남북 간 대화를 재개한다고 해도 자기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며 “북한이 남측과 협력할 마음이 있었으면 이미 대화 창구에 나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달리 조 연구위원은 “문 대통령이 ‘동북아시아 방역·보건 협력체’를 제안한 것은 일단 꽉 막힌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기 위한 측면이 강한데, 최근 보도를 보면 북한도 치료제나 백신에는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북한이 현재는 코로나19 국면에서 문을 닫고 국제사회의 지원을 거부하고 있는데, 당장은 아니더라도 중국 등이 포함된 다자협력 틀을 활용한다면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만큼 협력해 올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중국이나 일본도 적극적으로 협조에 나설 수 있다”며 “그간 한반도 문제에 관여하고자 해도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없었던 이들 국가에게는 다자틀이 통로가 돼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남북 보건협력(CG) (출처: 연합뉴스)
남북 보건협력(CG) (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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