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의사숭모회, 사단법인 등록 앞두고 이봉창의사기념관 방문 점검
이봉창의사숭모회, 사단법인 등록 앞두고 이봉창의사기념관 방문 점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봉창의사숭모회(총재 이상면, 회장 김동영)가 사단법인 등록을 앞두고 18일 주요 임원진과 회원들이 완공을 앞두고 있는 이봉창의사기념관을 방문해 점검하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9.21
이봉창의사숭모회(총재 이상면, 회장 김동영)가 사단법인 등록을 앞두고 18일 주요 임원진과 회원들이 완공을 앞두고 있는 이봉창의사기념관을 방문해 점검하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9.21

“이봉창 의사 의거 재평가돼야”
규모 작지만 뜻을 선양하는 자리로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이봉창의사숭모회(총재 이상면, 회장 김동영)가 사단법인 등록을 앞두고 지난 18일 주요 임원진과 회원들이 완공을 앞두고 있는 이봉창의사기념관을 방문해 점검하고, 효창원묘소에서 참배했다.

이날 이상면 이봉창의사숭모회 총재(전 서울대 법대 교수), 김동영 이봉창의사숭모회장, 김석환 충효예문화운동본부 공동총재(서울시회장), 송병승 충효예문화운동본부 공동총재(충효예신문 논설위원), 김용해 충효예실천운동본부 총재, 서정용 복지TV 취재편집국장, 김구환 전 광복회 사무총장, 성광수 ㈜MST 회장, 차갑진 전 KBS 시청자센터장(한스엔터테인먼트 회장), 김동수 강서구 공인중개사협회 회장, 선승주 이봉창의사숭모회 사무처장(한국문자교육회 이사) 등이 참석했다.

이봉창의사(1901~1932) 기념관은 서울 용산구(구청장 성장현)가 10월 개장을 목표로 한창 마무리 작업 중이다. 기념관은 전통 목구조에 기와지붕으로 지어졌다. 용산구에 따르면 사업 위치는 효창동 286-7번지, 부지 면적은 484.4㎡다. 기념관 내부는 전시실(49.31㎡), 준비사무실(4.46㎡), 주민휴게실(7.87㎡)로 구성된다. 또한 전시실 앞에는 툇마루(7.96㎡)를 설치, 방문객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계획됐다.

건물 외 부지는 ‘이봉창 역사공원’으로 꾸미며, 배롱나무 등 수목 709주를 심고 기타 초화류를 식재하며, 공원 경계에는 전통 한옥식 담장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기념관 건립 사업은 성장현 구청장이 2018년 민선7기 구청장 공약사업으로 내세워 당선 후 진행됐고, 사업비는 총 7억원이다.

김동영 회장은 “이봉창 의사는 원효로2가에서 출생했고, 기념관이 지어지는 장소는 이 의사가 이쪽(효창동 118번지)으로 이사를 오면서 생가 부근이자 성장지역이다. 용산역 공무원으로 출퇴근하면서 지냈던 곳이다. 다른 의사(독립운동가)들이 기념관과 함께 생가가 다 복원됐는데 불행하게도 우리가 부족해 늦게나마 이같이 짓게 됐다. 바로 근처에 아파트가 재건축되면서 기념관 건립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성장현 구청장이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봉창 의사는 결혼을 안한 채 32세로 의거를 한 탓에 자녀들이 없고 기념할 만한 유품도 없다. 그래서 영정 정도만 모시고 자료를 수집 중에 있다. 다른 기념관에 비해 규모도 작지만 이 의사의 넋을 기리고 정신을 본받는 곳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봉창의사숭모회가 18일 이봉창의사기념관을 점검한 후 이봉창 의사가 묻혀있는 효창원묘소에서 참배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9.21
이봉창의사숭모회가 18일 이봉창의사기념관을 점검한 후 이봉창 의사가 묻혀있는 효창원묘소에서 참배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9.21

이상면 총재는 “이 의사의 의거는 대단한 업적임에도 화력이 부족했다는 이유로 다른 의사에 비해 저평가를 받고 있어 안타깝다. 이제 이 의사 생가터를 찾아서 그 현장에 기념관을 짓게 됐는데, 그의 뜻을 우리 역사에 다시 선양하고 우리 마음속에 새기는 그런 기회를 마련한 것에 참으로 감명 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봉창 의사는 1932년 1월 8일 도쿄 요요기 연병장에서 신년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히로히토 일왕에게 폭탄을 던졌다. 비록 의거는 실패했지만 침체된 항일 독립운동의 불씨를 되살렸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이 의사는 1932년 9월 30일 도쿄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10월 10일 일본 이치가야(市谷) 형무소에서 처형당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6월 30일 김구 선생에 의해 이 의사 유해가 국내로 봉환돼 용산구 효창공원(효창원로 177-18) 삼의사 묘역에 묻혔다.

효창공원 내 이봉창의사숭모회 사무실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9.21
효창공원 내 이봉창의사숭모회 사무실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9.21

이 의사의 의거는 훗날 윤봉길 의사의 의거(1932. 4. 29) 등을 비롯한 애국지사들의 활발한 항일 독립투쟁으로 이어지게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잠자던 우리의 독립의지와 정신을 일깨웠다는 점에서 절반은 성공한 의거였던 것이다. 특히 윤봉길 의사의 상해의거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도 평가되고 있다.

실제 김구 선생은 “(이 의사의 거사가) 한인이 일본에 동화되지 않은 것을 세계만방에 보여줬다”고 자부했다.

다만 이봉창 의사 일가족과 친인척들의 희생이 너무나 컸다. 일왕을 건드렸다는 것만으로 이 의사는 일제에겐 최고의 대역죄인이 됐고, 가족과 친가들까지 같은 죄를 뒤집어쓰면서 숨어 살아야만 했다.

이봉창 의사 ⓒ천지일보DB
이봉창 의사 ⓒ천지일보DB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