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영상을 보고 또 봤다. 중간 중간엔 가슴이 뭉클할 때도 있었다. 정의당 초선 장혜영 의원. 지난 1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질의를 하기 전의 짧은 모두 발언은 한마디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87년생 장혜영이 86세대를 향해 반듯한 어조로 그러나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싸우겠다던 그 뜨거운 심장이 어째서 이렇게 식어버린 것입니까”라는 천둥 같은 일갈이었다.

1987년생이니까 올해 나이 서른셋, 민주화 운동이 절정을 이루던 딱 그해 태어났으니 한국 민주화의 역사도 서른세 돌을 맞은 셈이다. 86세대인 필자는 장혜영 의원을 전혀 모른다. 그러나 정의당 소속인 만큼 장 의원의 철학과 신념이 어떤지는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길지 않은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어느 정도는 감이 잡힌다. 아마 누구보다 더 치열하고 올곧게 살아오면서 밖으로는 사회정의와 평등사회에 목말랐을 것이다.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사회는 곳곳에서 사회정의가 짓밟히고, 평등사회를 향한 꿈은 이미 두 동강 난 상태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타는 목마름이 장 의원을 정의당으로, 그리고 국회로 향하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른셋 초선 의원의 목소리치고는 워낙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집권당인 민주당 소식을 듣노라면 솔직히 말해 절망적이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가장 앞장섰던 역사적 정통성을 가진 정당이다. 그리고 민주당 주류는 그 민주화 운동의 산증인들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서른세 돌을 맞은 오늘, 지금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씁쓸함과 냉소를 지울 수 없다. 민주화가 지체되고 양극화는 커지고 있으며 국민의 삶은 더 힘겹다. 그럼에도 온 나라가 연일 ‘편 가르기 싸움판’으로 변해가고 있다. 정치권이 주범이다. 그 중에서도 싸움판의 핵심 동력은 여권에서 만큼은 86세대를 빼놓을 수 없다.

조국 사태는 그 압권이었다. 여론을 두 갈래도 갈라놓고 ‘적’을 향해 총공세를 펼쳐대고 있는 주력부대가 사실상 그들이다. 때론 전면에 나서고 또 때론 궤변으로 엄호하면서 필요할 때는 선동까지 일삼는다. 87년 민주화 운동 때의 그 전선이 이젠 그들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방호벽’이 된 것이다. 윤미향 민주당 의원을 향한 여론의 비판이 있을 때도 그랬다. 졸지에 비판세력을 ‘친일파’로 갈라치는 순발력은 과거 민주화 운동의 ‘후유증’일 것이다. 최근의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향한 비난 여론도 마찬가지다. 추 장관을 비난하는 쪽을 향해 온갖 궤변과 억지가 쏟아지고 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다.

장혜영 의원도 말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한때는 변화의 가장 큰 동력이었던 사람들이 기득권자로 변해 변화를 가로막는 존재가 돼 버린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했다. 그들은 나이가 들어서 변질된 것이 아니다. 배가 불러서 변질된 것도 아니다. 그들은 그들끼리 연대하면서 어느새 우리 사회의 ‘특권세력’이 돼 버린 것이다. 특권세력, 그들은 혁신을 거부하고 변화에도 둔감하다. 오직 ‘누리기 위한 모든 것’에 집착할 뿐이다. 그들의 특권에 도전 하는 모든 것들은 ‘적’이다. 그러니 그 적들과 싸우는 일에는 똘똘 뭉치기 마련이다. 오만과 편견, 궤변과 억지가 재생산되는 계급적 구조가 돼버린 것이다. 86세대의 구조화 된 특권의식은 민주화 이후 민주화 세력의 최대 비극 중 하나다.

장혜영 의원은 2017년의 촛불집회를 언급하며 자신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게 나라냐’며 외쳤던 촛불 민심으로 정권교체를 이룬 문재인 정부에 큰 기대를 걸었다고 했다. 그러나 장 의원의 고백처럼 문재인 정부의 현실은 실망이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긴 하지만 뭣 하나라도 뚜렷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한 굴복, 통신비 2만원의 냉소는 문재인 정부 집권4년차의 국정운영 동력을 크게 흔들고 있다. 여기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 문제까지 겹쳐서 상황이 더 복잡하게 됐다. 여론의 이탈을 넘어 정권을 향한 분노가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다는 뜻이다. 장 의원의 호소는 상황이 이런데도 한 때 민주화 운동의 최전선에 섰던 86세대들마저 기득권에 안주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원망이다. 아니 87년생 30대들의 절절한 눈물처럼 들렸다. 제발 변화와 개혁의 걸림돌이 아니라 다시 디딤돌이 돼 달라고 말이다.

그러나 장혜영 의원의 호소는 이렇다 할 반향이 없을 것이다. 기득권 세력은 더 뭉칠 것이며, 86세대의 구조화된 특권은 그들의 철옹성은 더 단단하게 다져나갈 것이다. 그들은 다음 정권에서도 살아야 하니 말이다. 아니 어쩌면 벌써 다음 정권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패거리 싸움에 능한 자들, 그들은 분열적 전투를 반복하면서 그들의 특권을 지켜왔다. 그 싸움에서는 ‘진영 대결’보다 더 매력적인 것도 드물 것이다. 상대가 상식 밖의 집단들이기 때문이다. ‘태극기 부대’는 상대편의 중심에 있다. 참으로 쉬운 싸움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차기 대선까지 우리 사회는 생각보다 더 치열한 진영 대결, 아니 ‘패거리 싸움’이 전개될 것이다. 냉소나 악담이 아니다. 진영 대결은 이미 한국정치의 기본 문법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86세대의 생존방식과 그들의 기득권 유지, 사회갈등의 재생산과 끊임없는 정쟁 그리고 사회에 넘쳐나는 음해와 저주, 적개심 등은 대부분 그 문법 안에 있다. 심지어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버틸 수 있는 것도 그 문법을 따를 때다. ‘적대적 공생관계’가 딱 맞는 말이다. 정의당이 왜소하게 추락한 것도 전략적 오판이 컸지만, 결국은 그 문법에 맞섰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앞으로 겪게 될 정의당과 젊은 장 의원의 슬픔과 눈물을 생각하면 86세대로 살고 있는 필자는 참으로 부끄럽고도 미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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