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필자는 며칠 전 우연히 1인 시위 하는 사진을 두 장 건네받았다. 사진 속 주인공은 철원에 사는 주민이다. 어머니와 딸이 피켓을 들었다. 딸은 중학생이다. 바쁜 추수철임에도 철원이라는 먼 곳에서 청와대까지 모녀가 함께 달려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사연은 빼꼭하게 적은 1인 시위판에 잘 나와 있다.

‘코로나에 멍든농심 물폭탄 지뢰폭탄 쭉정이벼 한되라도 목숨걸고 베야하나 생존보장 생계보장 각자도생 해야하나. 지뢰농사 지러가세 목숨걸고 지러가세 접경지역 농사꾼도 대한민국 국민인데 나라님도 의원님도 누구하나 관심없네.’

1인 시위판 두 개의 문구다. 마디마디 외침이 절실하지 않은가? 얼마나 애가 탔기에 이런 문구가 탄생했나 싶다.

사진을 건네준 사람은 청와대 앞에서 300일 넘게 1인 시위를 하는 사람이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태풍이 몰아치거나 땡볕이 내리쬐거나 영하의 동장군이 내습하거나 관계없이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 법적 제도적 재발방지책 마련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3학년 4반 임경빈 군의 어머니 전인숙씨다. 사람들은 ‘경빈 엄마’라고 부른다. 경빈 엄마는 왜 사진을 찍은 걸까? 외치는 내용은 다르지만 ‘생명안전 보장’이라는 요구에 마음이 닿아서였을 거다. 경빈이 엄마에게 철원에서 오신 분의 연락처를 부탁했다. 다음 날 연락처를 톡으로 보내 주셨다. 며칠 뒤 통화가 됐다. 1인 시위 나온 어머니의 남편이자 딸의 아빠 최씨였다. 이분도 연이어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문 대통령 앞으로 보내는 호소문’을 청와대에 접수시키기도 했다. 그동안 사정도 모르고 있었고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더니 찾아줘서 큰 힘이 된다고 했다. 말하는 내용 하나하나가 구구절절하고 분노와 원망이 묻어났다. 청와대와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은 ‘나와 내 가족’, 마을사람들, 접경지역 사람들의 목숨을 안전하게 해달라는 거다. 이번 ‘비 폭탄’으로 떠내려온 지뢰가 논밭과 하천변에 널려 있어 움직일 수조차 없다고 한다. 최씨 논에서도 지뢰가 발견됐다. 현재 강원도 접경지역 논밭에서만 지뢰가 150여발이나 발견된 상태다.

최씨 가족이 사는 곳은 이길리 마을이다. 다른 마을 세 곳과 함께 마을이 완전 수몰돼 대피한 곳이다. 지난달에 철원엔 열흘 사이에 1000mm의 비 폭탄이 쏟아졌다. 사상 최대의 폭우로 저지대에 형성된 마을이 침수됐다. 왜 저지대에 마을이 형성된 걸까? 북한을 의식해서라고 한다. 민통선 안에 마을이 조성될 때 이주민들은 저지대를 피하려고 했다고 한다. 군 당국이 저지대를 고집했는데 북한에서 잘 보이는 곳이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고 한다. 북한 지역은 지형이 높고 이길리 쪽은 낮다. 이 마을이 ‘선전마을’로 조성된 정착촌인 걸 감안하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대한민국은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어 저지대에 마을을 만든 게 사실이라면 이번 수해는 국가적 인재이다. 분단현실 속에서 체제우위를 선전하기 위해 위험성이 내재된 저지대에 마을을 만들도록 국가가 강요했다면 이번 폭우 피해는 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문제다.

농민 최씨와 두 차례 통화하면서 철원지역 등 접경지역의 수해와 지뢰 유실문제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국가가 나 몰라라 하는 것도 알게 됐다. 안전한 사회를 약속하며 집권한 문재인 정부임에도 생명안전 문제에 둔감하다는 걸 실감했다. 마을이 통째로 침수됐기 때문에 마을 이주도 거론되고 있는데 정부는 규정을 이유로 가구당 1600만원밖에 지원할 수 없다고 말한다고 한다. 집을 지으려면 조립식으로 짓더라도 억대가 드는데 1600만원 주고 이주하라고 하면 누가 이주할 수 있겠는가? 이러니 “이게 나라냐?”는 소리가 안 나올 수가 없다.

이주 대책에 대한 비용 전체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생명과 생계를 위협하는 지뢰는 즉시 제거돼야 하고 지뢰 제거로 인해 발생하는 농작물 피해는 국가가 전액 보상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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