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사건으로 인해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된 박근혜 정부의 뒤를 이어 ‘부정부패가 없고 공정한 사회’를 약속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문재인 정부는 4대 비전과 12개의 세부 계획을 통해 총 784개의 공약을 제시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문재인 정부의 공약 이행율은 13.9%에 그쳐 곳곳에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본지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 진행상황을 점검하는 동시에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8차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8차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민간인 불법사찰 방지법 마련 성과 없어

과거사 진실 규명법 통과… 후속 조치 필요

드루킹 사건으로 인터넷 실명제 사실상 철회

인터넷 정치 표현 자율규제도 제자리걸음

이종훈 “권력형 비리 막기 급급할 것”

“남은 2년 동안 이행률 높아지지 않을 것”

[천지일보=이대경 기자]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며 인터넷상 익명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한 토대 마련, 언론 자유와 독립을 회복 등을 통해 ‘인권 강국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3년이 지났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민주 인권 회복을 위해 ▲국가권력의 불법사찰 근절과 국가폭력 피해자 지원 ▲과거사 진실규명 완수 ▲개인·신용·통신 정보의 안전한 보호 ▲인터넷상 익명 표현의 자유 보장 토대 마련 ▲언론의 자유와 독립 회복 등을 세부 공약으로 수립했다.

우선 국가권력의 불법사찰을 근절하고 국가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겠다는 공약은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해 무분별한 사이버사찰과 도‧감청 남용 방지 대책을 마련한 것 외에는 대체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3월 5일 수사기관이 특정 대상의 인터넷 정보를 감청하는 ‘패킷 감청’ 관련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개정안에는 일어나지 않은 범죄 예방에 감청자료를 쓸 수 있고 감청 당사자가 부당함을 호소할 절차가 없다는 한계가 있어 비판이 제기된다.

또한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민간인 불법사찰 방지법(불법 사찰죄 신설)’ 마련도 현재까지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과거사 진실 규명의 경우에는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 수정안이 20대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형제복지원 사건, 선감학원 사건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 등에 대한 진실규명의 길이 열리게 됐다.

다만, 과거사 청산 관련 후속 조치 마련을 해야 한다는 과제는 남아 있다.

개인정보의 안전한 보호도 지지부진하다. 개인정보 보호법을 비롯해 개인정보 관련 3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방송통신위원회와 행정안전부 등에 흩어져 있던 개인정보보호 업무를 일부 일원화했다.

그러나 국무총리 산하에 둠으로써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고 객관적 위상이라고 보기 어렵고 개인정보보호 유출사고가 가장 잦았던 분야인 금융 분야의 개인정보보호 업무는 여전히 금융위원회에 남아 있어 ‘반쪽짜리’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제공: 국민의힘) ⓒ천지일보 2020.9.8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제공: 국민의힘) ⓒ천지일보 2020.9.8

지난 1월 개인정보 오남용의 우려에도 개인과 기업이 수집·활용할 수 있는 개인정보 범위를 확대해 빅데이터 산업을 활성화하는 내용을 담은 ‘데이터 3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부는 모든 금융권의 신용정보 관리·보호 운영 실태에 대한 점검체계를 개선하고 그 결과를 점수화·등급화해 금감원 검사 등에 활용하는 ‘금융권 정보 활용·관리 상시평가제’를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상황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상 익명 표현의 자유 보장과 언론의 자유에 대해서는 아직 갑론을박이 진행되고 있다. 많은 논란이 있었던 인터넷 실명제 폐지는 2018년 5월 ‘드루킹 댓글 조작 파문’이 확산하면서 오히려 실명제가 힘을 받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후 정부나 국회 차원의 선거법상 인터넷 실명제 폐지 논의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21대 국회 총선공약에서 해당 공약을 제외하면서 사실상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위법성 조각사유 대폭 확대와 인터넷상 정치적 표현에 대해서는 자율규제로 전환도 3년이 지나도록 이행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억울하게 해직‧정직을 당한 언론인에 대한 명예회복‧원상 복귀와 언론탄압 진상규명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인권을 강조하는 진보세력이 정권을 잡았지만, 인권 국가 공약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보이자 손을 놓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언론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KBS, MBC 등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과 보도 제작 편성의 자율성 확보를 추진하는 공약은 여야의 대립으로 20대 국회에서는 통과하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지난 총선에서 이사회 구성을 13인으로 늘리고 여야가 7대 6으로 추천하는 안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민주당은 관련 공약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14일 천지일보와의 통화에서 “정부와 민주당은 인권을 챙기고 있고 어느 정도 향상됐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다”며 “특히 자신들과 관련한 권력형 비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고 이를 막아야 하기 때문에 인권 관련 공약을 챙길 여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 등을 통해 인권이 강화된다면 자신들의 운신의 폭이 훨씬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는 것 같다”며 “문재인 정부 임기가 2년 남았는데, 그동안 공약 이행률이 높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문재인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초청 간담회[서울=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간담회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초청 간담회[서울=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간담회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