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드퍼드(미 오리건주)=AP/뉴시스]미 오리건주 메드퍼드에서 지난 8일 통제되지 않는 산불이 마을 전체를 파괴하며 불타고 있다.
[메드퍼드(미 오리건주)=AP/뉴시스]미 오리건주 메드퍼드에서 지난 8일 통제되지 않는 산불이 마을 전체를 파괴하며 불타고 있다.

지난주부터 3개주 휩쓸어

28명 사망·50만명 대피령

“한 세대 만에 있는 특수 기후”

[천지일보=이솜 기자] “시위에,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에, 이제 산불까지 났습니다. 다음엔 뭘까요?”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남동부의 해피밸리에 사는 주민 다니엘 올리버(40)는 자가면역질환이 있어 산불 연기로부터 대피하기로 했다. 바이러스 때문에 보호소에 가는 게 불안했지만 그의 남편과 15살짜리 딸, 개 두 마리,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차에서 자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그로 인한 경제 침체와 정치적 긴장 상황을 겪고 있는 미국을 또 하나의 불행이 휩쓸었다.

12일(현지시간) AP통신, CNN방송에 따르면 오리건, 캘리포니아, 워싱턴에서 최근 발생한 화재로 28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실종됐다. 오리건주 비상관리 책임자는 더 많은 시신이 화산재에서 발견될 수 있는 ‘대규모 사망 사건’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립중앙소방본부에 따르면 아이다호에서 12건, 몬태나에서 9건 등 서부 전역에서 97건의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서부 3개 주의 피해 면적만 따져도 1만 9125㎢에 달한다. 이는 대한민국 국토 면적의 약 5분의 1(19.1%)에 해당한다. 

올리버는 발열체크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하고 있는 적십자사 대피소에 들어가 집이 불타지 않고 무사하기만을 빌며 지낸다고 했다. 노숙 생활을 겪은 올리버는 “피곤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데 지쳤다”며 “모든 것을 얻고, 모든 것을 위해 일하고, 모든 것을 잃는다”고 토로했다.

몇 개의 마을을 파괴하고 주민 50만명에게 대피령을 내린 이번 치명적 화재는 훨씬 더 광범위하게 퍼지는 연기를 만들어내면서 미국 서부를 마비시켰다. 현재 캘리포니아를 뒤덮고 있는 검은 연기는 대낮에도 캄캄한 하늘과 희미한 태양 빛이 섞여 오렌지 빛을 보여주고 있다. 의사들은 이 연기가 코로나19에 더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기 오염도가 세계 최악으로 치달은 상황에서 주민들은 연기가 들어오지 않도록 문 밑 틈에 수건을 넣었다. 일부는 심지어 집에서 N95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AP는 화재 피해를 입은 일부 지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폭격으로 파괴된 유럽의 도시와 같이 폐허가 됐다고 전했다.

케이트 브라운 오리건 주지사는 오리건주에서만 4만명 이상이 대피했으며 약 50만명에게 대피령이 내려졌다고 말했다.

다니엘 베를란트 캘리포니아 소방서 부국장은 캘리포니아에서 총 28건의 화재가 발생해 4375평방마일을 태웠고 4천여개의 건물이 파괴됐으며 1만 6천명의 소방관이 화재 진압에 동원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작년 이맘 때의 화재보다 몇 배나 높은 수치다. 지난 8월 중순 캘리포니아에서 번개로 인한 산불이 발생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모두 19명이 숨졌다.

캘리포니아 부트 카운티의 집에서 대피한 존 트립은 CNN에 자신이 다시 돌아왔을 때 무엇이 남아있을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그는 “난 마이애미 출신이다. 허리케인을 겪었고, 토네이도도 경험했다”며 “그런데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주 북동부에서도 15개의 대형 산불이 계속되고 있다. 제이 인즐리 워싱턴 주지사는 지난 5일간의 화재가 워싱턴 역사상 두 번째로 최악의 화재라고 밝혔다.

지난주 초 인즐리 주지사는 워싱턴 동부의 작은 마을 말든을 방문했다. 이곳은 화재로 소방서, 우체국, 시청, 도서관 등 도시 건물의 80%가 완전히 파괴됐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과 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주의 민주당 주지사들은 이번 화재가 지구 온난화의 결과라고 성토했다. 인즐리 주지사는 “이번 화재를 ‘기후 화재’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즐리 주지사는 “이는 신의 행동이 아니다”며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우리가 워싱턴주의 기후를 극적으로 변화시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린필드대 교수이자 기후학자인 그레그 존스는 “화재를 유발하고 화염을 내뿜는 기후 조건은 한 세대 만에 한 번 있는 사건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존스 교수는 남서쪽 사막에서 알래스카까지 뻗은 큰 고기압의 영향으로 동쪽으로부터 서부 해안을 향해 강한 바람이 불어 상대 습도가 8%까지 낮아지면서 해안도 사막과 같은 상태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존스 교수는 “지구온난화가 이런 상황을 야기시켰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온난화가 극한 사건의 발생 가능성을 높이고 심각성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캘리포니아를 방문해 이번 화재에 대한 브리핑을 받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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