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애로우’ 속 주인공 ‘그린 애로우’ (출처: 해당 드라마 포스터) ⓒ천지일보 2020.9.11
미드 ‘애로우’ 속 주인공 ‘그린 애로우’ (출처: 해당 드라마 포스터) ⓒ천지일보 2020.9.11

 

미드 ‘애로우’의 영웅 ‘그린 애로우’

허구의 인물이지만 ‘희망’ 꿈꾸게 해

무법천지 세상 속 외로운 히어로의 길

한 사람의 희생이 낳은 새로운 세상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넌 이 도시를 망쳤어!”

미국드라마 ‘애로우’에 나오는 대사다. ‘애로우’는 미국 CWTV에서 2012년 10월(애로우 시즌1)부터 지난 1월(애로우 시즌8)까지 방영된 히어로물이다.

낮에는 억만장자 바람둥이지만 밤에는 활을 들고 악당을 물리치는 그린 애로우(올리버 퀸)를 중심으로 범죄자를 소탕하는 자경단의 이야기를 담았다. 철부지 바람둥이 도련님이 도시를 지키는 그린 애로우가 되기까지의 사건과 그 사건 안에 숨겨진 비밀 그리고 자경단이 되어 악당들의 소굴이 된 스탈링 시티(후에 스타 시티로 바뀜)를 구하기 위한 고군분투 속에는 ‘희생’이라는 큼직한 명제가 자리하고 있다.

 

드라마 속 그린 애로우는 자신이 나고 자란 도시를 구하기 위해 신분을 숨긴 채 범죄자들을 소탕한다. (출처: 해당 영상 캡처) ⓒ천지일보 2020.9.11
드라마 속 그린 애로우는 자신이 나고 자란 도시를 구하기 위해 신분을 숨긴 채 범죄자들을 소탕한다. (출처: 해당 영상 캡처) ⓒ천지일보 2020.9.11

문득 이 시점에서 미드 ‘애로우’가 떠오르는 것은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과 아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드라마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거나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여느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서도 그렇지만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찐(진짜)’ 악당들은 돈 있고 권력 있는 자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자기들의 부와 권력을 지키기 위해, 혹은 개인의 복수 때문에 불특정 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억만장자의 아들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던 올리버 퀸이 그린 애로우가 된 배경에는 부모님을 포함한 상위 1%의 사람들이 망쳐놓은 도시를 바로잡기 위한 것도 있다. 이는 자신을 위해 희생한 아버지의 유언이기도 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응징해도 되는 것인가. 미드 ‘애로우’는 이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했던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와 권력을 법보다 위에 두고 사는 이들에게 ‘법’은 그저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이들은 법을 교묘하게 피하든지, 대놓고 법을 어긴다. 사법부마저 이들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거나 외려 한 배를 탄다. 법이 정의의 편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으로 범죄자들을 정죄할 수 있단 말인가.

 

억만장자 올리버 퀸은 도시를 지키기 위해 밤이면 그린 애로우가 되어 범죄자들과 싸운다. (출처: 해당 드라마 캡처) ⓒ천지일보 2020.9.11
억만장자 올리버 퀸은 도시를 지키기 위해 밤이면 그린 애로우가 되어 범죄자들과 싸운다. (출처: 해당 드라마 캡처) ⓒ천지일보 2020.9.11

법이 ‘악당’들의 편이라면 이미 그 법은 무용지물이며, 말 그대로 법이 없는 무법천지가 되고 만다. 무법천지의 세상은 또한 ‘이현령비현령’이라 하듯 기준도 없이 법을 자기 마음대로 이용해 먹을 수밖에 없다.

형사법의 경우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구속수사가 원칙이지만 이 ‘불가피’한 경우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 적지 않다. 한마디로 정의가 바로 서지 않은 세상이다. 세상이 이렇다보니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상의 ‘히어로’들에 열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둠을 몰아내는 힘든 여정의 끝에는 ‘빛’이 있음을, 또한 ‘빛’은 분명 어둠을 몰아내고야 만다는 것을, 그래서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일명 ‘히어로물’은 말해주고 있다.

미드 ‘애로우’에는 주인공 ‘그린 애로우’ 외에도 그와 함께 악당을 소탕하는 ‘팀 애로우’가 나온다. 처음 ‘후드’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독자적으로 활동했던 그에게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모여 하나의 ‘팀’이 된다. 화살을 사용해 범죄자를 처단하는 다소 폭력적인 그린 애로우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지만, 법도 무용지물인 판에 자경단 그린 애로우의 등장은 ‘희망’을 품게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이들이 영웅이 아닌가 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0.9.11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이들이 영웅이 아닌가 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0.9.11

드라마 속 대사 중 이런 말이 나온다. “당신들이 잊고 있던 그곳!”

경찰들도 신경 쓰지 않는 그곳. 그곳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사는 곳이자 범죄가 끊이지 않는 곳으로 대변된다. 또한 그곳은 소위 권력을 쥐고 있는 상위 1%의 부자들이 도시의 발전을 위해서는 없애도 되는 곳으로 치부된다. 실제 드라마 속에서 그곳은 위선자들이 만들어낸 인공지진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폐허가 되다시피 한 곳이다.

법도 도움을 줄 수 없는 그곳. 법마저 조롱하고 비웃는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곳. 드라마 속에서는 이들과 맞서고 정의를 세우려는 히어로들이 지키고 있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법대로 살아도 범죄자의 오명을 쓰기도 하고, 무법천지 안하무인으로 살아도 잘만 사는 세상이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있었던 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풍진 세상,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많은 영웅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 속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은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모든 이들이 아닐까 한다. 특히 요즘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세계가 힘들어 하고 있을 때 코로나19 방역의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의료진들은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0.9.11
현실 속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은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모든 이들이 아닐까 한다. 특히 요즘처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세계가 힘들어 하고 있을 때 코로나19 방역의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의료진들은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0.9.11

드라마나 영화 속 히어로들은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사기 캐릭터’들이 대부분이지만 현실 속 우리의 영웅들은 실존하는 인물이기에 그들의 그 희생이 더욱 값지게 다가온다.

“올리버 퀸(그린 애로우)은 단지 영웅이 아닌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기에 제 기준에서는 더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 모두가 바뀔 수 있다는 교훈을 줬습니다.”

“올리버는 도시를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다른 사람이 돼야 한다고 했죠. 다른 존재가 돼야 한다고요. 그게 그린 애로우가 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오늘 깨달았습니다. 그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거라는 것을요.”

비록 드라마가 만들어낸 허구의 ‘영웅’이지만 그린 애로우를 추억하는 이들의 말을 통해 오늘날 진정한 영웅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대사다. 내 자신이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그렇게 될 때에 분명 세상은 더 이상 영웅이 필요 없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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