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차시환혼(借屍還魂)
[고전 속 정치이야기] 차시환혼(借屍還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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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진시황은 통일과정에서 장기간 군사행동을 계속했고, 이후에도 흉노를 막기 위해 장성을 쌓았으며, 남쪽의 백월을 토벌했다. 또 대규모의 아방궁과 시황릉을 수축하고, 사방팔달의 도로를 건설했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인력과 비용이 소모돼 사람들은 지쳐갔다. 진이세 원년(BC209) 7월, 어양의 수비를 위해 안휘성의 백성 9백명이 동원됐다. 주야로 행군했으나, 대택향에 도착했을 때 몇 달이나 이어진 폭우를 만나 행군하지 못했다. 기한에 이르지 못하면 참수형을 받는다. 모두 공포에 사로잡혔다. 진승(陳勝 또는 陳涉)과 오광(吳廣)도 포함됐다. 머슴 출신이었지만 뛰어난 리더십을 갖춘 진승이 두령으로 추천됐다. 사람들이 대책을 묻자, 진승이 도망쳐도 죽고, 그렇지 않아도 죽는다고 말했다. 오광은 활로를 찾자고 선동했다.

모두 동의했다. 대단한 호소력이 있었을 것이다. 위엄과 신뢰를 얻기 위해 신비주의가 동원됐다. 진승은 돛에 붉은 단사로 ‘진승왕(陳勝王)’이라는 글자를 물고기의 뱃속에 넣고, 수졸에게 일부러 그것을 사오게 했다. 글씨를 본 사람들은 깜짝 놀라 진승이야말로 제왕의 운명을 타고 났다고 떠들었다. 오광은 사당에 불을 피우고 여우소리를 가장해 ‘대초흥(大楚興) 진승왕(陳勝王)’이라는 소리를 내도록 했다. 소문이 퍼지자 진승의 위신이 높아졌다.

인심을 얻은 진승은 반란을 일으켰다. 강력한 응집력이 생기자 공동의 목표가 수립됐다. 억울하게 죽은 진시황의 맏아들 부소(扶蘇)와 망국 초의 명장 항연(項燕)의 명의로 진의 폭정에 항거한다는 기치를 들었다. 당시 사람들은 부소가 진시황의 뒤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부소가 이미 호해에게 피살된 사실을 몰랐다. 알았더라도 진이세의 무능 때문에 그가 살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항연은 초나라 최고의 명장이었다.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나 진과의 전투에서 왕전(王翦)에 죽었다. 교통과 정보소통이 좋지 않았던 당시의 사람들은 어딘가 먼 곳으로 피했을 것이라는 전설을 믿었다. 진승과 오광은 먼저 두 명의 압송관을 죽이고, 9백병의 수졸들을 소집해 설득했다.

“어양에 기한 내에 도착하지 못하면 죽는다. 도착해도 변경을 지키다가 절반 이상 객사한다. 우리는 당당한 사나이다. 죽더라도 골라서 죽어야 천하에 이름을 날린다.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느냐? 왕후장상이 하늘에서 타고 났기 때문에 복을 누린다면, 우리는 하늘로부터 노예로 살아야 한다는 명을 타고났는가? 그렇지 않다.”

감격한 사람들은 진승을 따르겠다고 맹세했다. 진승과 오광이 부소와 항연이라고 생각한 많은 사람들이 호응했다. 도처에서 관리들을 죽이고 죄수들을 석방했으며, 창고를 열어 굶주린 백성들을 먹였다. 민심은 그들을 따랐다. 순식간에 수만이 모이자, 전차 7백승과 수천필의 전마를 얻었다. 진현(陳縣)을 점령한 진승은 지역 유지들의 추대를 받아 왕이 됐다. 오광은 부왕격인 가왕(假王)으로 옹립됐다. 그들이 세운 나라가 장초(張楚)이다. 진말에 의군을 일으킨 진승과 오광은 처음에 세력이 약했기 때문에, 민심이 앙모하는 부소와 항연의 명성을 빌려 힘을 강화했으며, 포악한 진을 멸한다는 대의을 내세워 정의의 군대라는 명분을 얻었다. 그것이 ‘차시’였다. 상당한 호소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다른 힘에 의존해 차시를 함으로써 훌륭히 ‘환혼’까지 성공할 수 있다는 실증이다. 부소와 항연의 지명도와 영향력을 충분히 이용했으며, 그 두 사람의 인격적 역량에 의존해 반군의 응집력을 높였고, 두 사람의 이름으로 의군을 일으켜 폭정과 무도함에 반대한다는 큰 깃발을 휘둘렀기 때문에 대단한 호소력을 지니게 됐다. 진승과 오광은 인정(仁政)을 베풀고 도(道)를 펼치는 의로운 사람을 대표했었으며, 그의 군사들은 의로운 일을 행한다는 명분을 장악했다. 죽은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의 그림자가 아직까지 짙은 우리의 정치판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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