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詩] 시간에 맞서다 - 하청호
[마음이 머무는 詩] 시간에 맞서다 - 하청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간에 맞서다

하청호(1943 ~ )

할아버지가 리어카를 끌고

언덕길을 내려가고 있다

삶이 더 이상 빠르게 내려가지 못하도록

힘겹게 버티며 가고 있다

리어카에 가득 쌓아올린 재활용품의

무게가 아랑곳없이 할아버지를

끌어내리고 있다

 

할아버지는 온 몸으로

삶을 버티지만 낡은 신발은

끄윽­ 거리며 아래로 밀리고 있다

바람마저 여윈 등짝으로 불어와

언덕 밑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삶의 바닥은 가까워지지만

남은 시간에 정면으로 맞서며

안간힘을 조절하고 있다

 

[시평]

거리를 지나다 보면, 가끔 산더미 같이 높게 종이상자를 실은 리어카를 끌고 가는 할아버지를 만날 때가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실감하는 일이지만, 실상 맨몸으로 걷는 것도 힘이 들 때가 있다. 특히 언덕을 오른다거나 할 때는 더욱 그 어려움이 실감이 난다. 그러니 자신의 체격 몇 배나 되는 폐지를 차곡차곡 실은 리어카를 끌며, 언덕을 오르기도 하고, 언덕을 내려오기도 하는 할아버지, 바라보는 그 마음 착잡하기가 참으로 예사롭지가 않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고 하지만, 나이가 많은 분들이 자신의 힘에 부치는 노동을 해야 만이 살아갈 수 있다면, 그 현실은 안쓰럽지 않을 수가 없다. 리어카의 무게를 버티어내고자 안간힘을 쓰듯이, 어쩌면 할아버지는 온몸으로 버거운 삶을 버티어내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하여 자신에게 허여된 시간에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 신산(辛酸)의 삶을 견디고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 매일 같이 폐휴지들을 모으며,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눈이 내리나 무거운 짐을 끌고 오르고 오르는, 때로는 그 힘의 무게를 받아들이며 힘겹게 내려가고, 또 내려가야 하는 언덕뿐인 삶. 할아버지의 언덕은 늘 힘에 부치는 막막함이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