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9일 새벽 인천 을왕동에서 면허 취소 수준의 음주 상태에서 벤츠를 몰던 30대 운전자가 중앙선을 침범해 치킨 배달을 하던 50대를 치어 사망케 했다. 먹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 버티던 사람의 목숨을 허무하게 빼앗아 가버렸다.

음주 운전자에겐 법정 최고형으로 처벌해야 한다. 음주운전을 다룸에 있어 검사는 기소를 가볍게 하고 판사는 형량을 가볍게 선고하는 게 관행이 된 것 같다. 잘못된 관행은 과감히 끊는 행동이 필요하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고 있는 사회다. 생명 안전 문제에 대한 기소와 판결에서 온정주의가 지배하게 되면 온정주의를 끊고 법의 엄정함을 보인 경우와 비교할 때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희생당하게 된다. 법에 있어 온정주의는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이다.

지금도 법원은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있다. 공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음주운전에 걸려 문제가 됐을 때 대부분 가볍게 처벌한다. 국회의원 이용주씨의 경우도 가수 장용준씨의 경우도 가볍게 처벌 받았고 배우 손승원씨의 경우는 실형이 선고되긴 했지만 형량은 1년 6월에 불과하다. 음주운전 해도 가볍게 처벌받고 마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판결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왜 음주운전 사고가 되풀이 될까? 핵심적인 이유는 ‘음주운전은 살인이다’는 인식이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법률이 무르고 검사와 판사들이 무른 법률마저 법대로 적용하지 않고 신분의 높고 낮음에 따라 다르게 기소하거나 다르게 판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또 검사와 판사가 이런저런 사정을 감안한다면서 솜방망이 처벌을 일삼기 때문이다. 입법자와 사법당국의 태도가 안일하니 사람들 머릿속에 ‘음주운전을 하면 패가망신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을 수 없는 건 당연하지 않겠나?

윤창호법은 2018년 9월 윤창호 군이 휴가 나왔다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건이 계기가 돼 만들어졌다. 고 윤창호 군의 친구들이 법안을 직접 만들어 국회의원들에게 갖다주고 서명도 받았던 법률안이었는데 정부 당국과 정당, 의원들이 입법 과정에서 살인죄와 형평성이 안 맞는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형량을 대폭 낮췄다.

원안은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가 난 경우 ‘징역 5년 이상’으로 처벌받을 수 있도록 했는데 국회 논의 과정에서 ‘3년 이상(기존 법률은 1년 이상)’으로 바뀌었다. 당시 윤창호 친구들도 형량 낮추는 걸 반대했다. 입법과정에서 수정안이라도 통과되지 않으면 이전과 같은 솜방망이 입법 환경이 계속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반대할 수도 없었다. 입법자의 의지가 없으면 좋은 법은 만들기 어렵다는 걸 실증해 주었다. 투표가 중요하고 주권자의 깨어있음과 참여 정신이 중요하다는 걸 일깨워 준 사건이다.

3년 징역으로 판결이 나면 대개는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특히 사회의 유력자들은 집행유예 받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유전무죄가 없다고 강변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5년형은 집행유예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5년 이하 규정’과 ‘3년 이하 규정’은 하늘과 땅 차이인 것이다.

윤창호법의 원안도 형량이 약했다. 그런데도 형량을 낮추었다. 이전보다는 나아진 건 분명하지만 윤창호법이 음주운전에 상당히 관대한 법률이기 때문에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크게 불러일으킬 수 없었다. 윤창호법의 원안을 후퇴시킨 의원들과 거대 정당들, 국회와 정부는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반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지난 총선에서 여든 야든 음주운전 전과자를 무더기 공천했다. 특히 여당이 많이 공천했다. 21대 국회의원 가운데 22명이 음주운전 전과자다. 국회가 나설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주권자인 국민이 “음주운전 근절을 위해 법을 강화하라”고 외쳐야만 정치권이 반응하지 않을까 싶다.

정치권과 정부, 국회가 알아서 하면 좋지만 기대하기 어렵다. 주권자의 참여와 압력이 없으면 좋은 법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저절로 작동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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