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루드비히 판 베토벤은 1770년 12월 16일 독일 쾰른시에서 멀지 않은 본(Bonn)에서 출생하였는데, 그의 조부 루드비히는 네덜란드 플랑드르 지방 출신으로 20세에 본(Bonn)에 정착하여 궁정악단(宮庭樂團)의 단원(團員)으로 활동하였다.

베토벤의 부친 역시 궁정악단의 테너 가수였으며, 모친은 요리사의 딸로서 어느 하인과 결혼하였다가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재혼한 것이었다.

베토벤의 어린 시절은 모차르트에 비하여 그리 행복하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부친은 베토벤이 4세 때 오늘날의 피아노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쳄발로 앞에 앉혀 놓기도 하고 바이올린을 연주시키기 위하여 방에 계속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환경을 모차르트와 비교할 때 열악한 환경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모차르트는 음악적인 환경 속에서 5세에 작곡을 하고 부친, 누이와 함께 연주를 위하여 유럽 여러 나라를 순회하는 등 베토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한편 베토벤은 10세에 작곡을 시작하였으며 11세에 궁정의 오르간 보조 연주자로 일했고, 12세에는 궁정 관현악단의 하프시코드 연주자로 일했다.

13세에 극장 오르가니스트가 되었으며, 4년 후인 17세에 베토벤은 빈으로 가서 14년 연상인 모차르트 앞에서 피아노를 쳤다는 것인데, 처음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던 모차르트가 자신이 준 즉흥곡을 그 자리에서 멋지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놀라움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모차르트가 베토벤의 연주가 끝난 이후 제자에게 “저 젊은이를 지켜보게. 머지않아 세상을 놀라게 할 녀석이니까”라고 말하였다는 일화(逸話)가 전해진다.

그런데 과연 모차르트의 예상과 같이 베토벤은 장차 음악계(音樂界)의 거목(巨木)으로서 불후의 명곡들을 남겼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친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본(Bonn)으로 왔는데, 모친은 결국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베토벤은 자신도 같은 병에 걸린 것으로 생각하고 괴로워하였으며, 여기에다가 우울증까지 겹쳤으니 여러모로 그의 삶은 평탄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제 모친이 세상을 떠난 이후 베토벤은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두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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