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검정 전경 ⓒ천지일보(뉴스천지)

한때 북방 관문의 중요 지역, 병사들 안식처
시인ㆍ묵객 즐겨 찾는 명소
건물 1941년 화재로 소실, 겸재 정선 그림 통해 복구
서울시 지방기념물 제4호 지정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조선 숙종 때 서울의 북방 관문으로 통했던 홍제천 일대 도로 옆에는 정자 하나가 풍류시대를 말해주듯 버젓이 서 있다. ‘세검정(洗劍亭)’은 예로부터 경치가 좋기로 유명해 많은 문학작품의 배경이 된 곳이다.

연산군은 일찍이 이 일대에 수각(水閣)과 탕춘대(蕩春臺) 등을 짓고 놀았다고 전해진다. 숙종 때는 이곳에 북한산성ㆍ탕춘대성을 쌓고 군사 요지로 삼으면서 병사들의 위락(慰樂) 장소로 이용했고, 이후에는 시인ㆍ묵객 등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세검정은 ‘칼을 씻고 평화를 기원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이귀ㆍ김류 등이 광해군 폐위 문제를 의논하고 칼을 씻은 자리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후 광해군은 폐륜적 행위와 외교정책 때문에 축출됐으며 묘호도 받지 못한 왕으로 남아있다.

이귀ㆍ김류 등은 이곳에서 칼을 씻음으로 폐위와는 상관없다고 손을 씻은 셈이다. 마치 성경 속에서 예수의 죄 없음을 인정하고 손을 씻은 빌라도와 같다.

정자는 경치를 감상하며 쉴 수 있도록 사방이 뚫려 있다. ‘ㅗ’자 모양이며 북악산ㆍ남장대ㆍ비봉(봉우리 모양 돌기둥) 등에 둘러싸여 있고 사천(내천가의 모래)이 계곡을 흐르는 경관지구에 속한다.

▲ 세검정 뒷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정자 앞은 쉼 공간으로 이용될 당시, 개울이 흐르고 북악산을 마주하는 경치가 빼어났을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은 정자 앞에 모텔과 빌라 등이 늘어서 있다. 바로 근처에 상명대학교가 들어오면서 유동인구수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세검정은 문인들이 경치 감상 등을 즐긴 곳인 동시에 근처에는 종이를 만들던 조지서(造紙署)가 있어서 세초(洗草) 작업이 이뤄진 곳이기도 했다. 세초 작업은 실록 편찬이 끝나면 사용한 종이를 씻는 과정이다.

세검정은 서울의 4소문 중 하나인 창의문 밖에 있으며, 군사 요새였던 홍지문과 탕춘대성 안, 경복궁 뒤편에 자리 잡은 곳으로 지금까지 이 일대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정자다.

▲ 세검정 표지석 ⓒ천지일보(뉴스천지)
현재의 건물은 1941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겸재 정선(1676~1759)이 그린 <세검정도(洗劍亭圖)>를 바탕으로 1977년에 복원한 것이다. 그림에는 세검정 뒤로 나지막한 담장이 둘러져 있고 길 쪽에 문이 있으며, 개울 쪽으로도 작은 문이 그려져 있다고 알려졌다. 지금은 개울 쪽 작은 문의 모습은 찾을 수 없어 그림과는 조금 다르다.

지금은 홍제천의 수면이 낮아져 물속 바닥이 보일 정도이지만, 세검정의 높이나 주변에 세운 담장 등을 보았을 때 건립 당시 물의 양은 지금보다 배로 차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세검정과 그 주변은 경치가 좋은 계곡에 정자를 지어 자연을 즐기려고 했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의 무대가 됐던 서울의 도성 밖 경승지다. 세검정은 현재 서울특별시 지방기념물 제4호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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