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재욱 충남대 명예교수

사람의 생물학적 학명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에서 ‘Homo’는 속명(屬名)으로 ‘사람’을 의미하며, ‘sapiens’는 종명(種名)으로 ‘지혜로움’의 의미를 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빠르고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는 사회 풍조에 부응해 종명 ‘사피엔스(sapiens)’ 대신 라틴어로 젖먹이동물(포유류)을 의미하는 접미어인 ‘~쿠스(~cus)’를 붙여 만든 신조어들이 매스컴이나 인터넷에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유형으로 바뀌어 불리고 있는 사람의 학명 호모 사피엔스에 연관된 신조어들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현대 사회에 잘 적응하는 새로운 생활형을 일컫는 호모 모빌리쿠스(Homo mobilicus)라는 말이 있다. 모빌리쿠스는 우리 일상의 필수품으로 자리하며 고대인이 사용한 도끼처럼 손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도구가 된 휴대전화 모바일폰(mobile phone)의 ‘mobile’에서 유래한 신조어다. 호모 사피엔스에서 통용되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이 호모 모빌리쿠스에서는 ‘나는 접속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바뀔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집콕’하는 시간이 늘며 홀로 핸드폰(handphone)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이 늘어나며, 휴대전화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호모 핸폰쿠스(Homo hanphoncus)라는 말도 통용되고 있다.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즐겨 찍는 사람들을 디카(dica)족이라고 부른다. 디카족은 공연장에서 팔을 높이 들어 촬영을 하거나 연극이 끝나면 무대 사진을 마구 찍어대기도 하는데, 이런 디카족을 지칭하기 위해 디카에 ~쿠스를 붙여 만들어진 호모 디카쿠스(Homo dicacus)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디카쿠스 중 디지털카메라를 이용해 촬영한 자신의 개성이 담긴 이미지(image)를 만들어 카톡을 통해 문자보다 더 유용하게 소통하는 사람은 호모 이미지쿠스(Homo imagicus)라고 부른다. 직장에서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앉아서 지내는 사람들은 ‘의자형 인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호모 체어쿠스(Homo chaircus)로 불린다.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미세먼지 환경에서 미세먼지를 두려워하며 생활하는 사람들은 호모 더스트쿠스(Homo dustcus)라고 부르며, 이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기도 했다. 속명인 호모(Homo)가 바뀐 말도 있는데, 스마트폰 사용이 일상화되며 2015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사람의 속명 호모를 스마트폰을 의미하는 ‘포노(Phono)’로 대치해 지칭하는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했다. ‘지혜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가 호모에 스마트폰이 도입되며 ‘지혜 있는 전화기’로 표현된 것이다.

호모 신조어를 주제로 한 책들도 발간되고 있다. ‘호모 모빌리쿠스(Homo mobilicus)’(김성도 저)를 주제로 발간된 책에서는 모바일폰을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의 매개체의 관점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나 위상의 정체성 등에 대한 개인의 자각, 사회적 행동 양식, 사회 조직 등에 연계된 현대문화의 주체로 다루고 있다. 근대 이후 급변해온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을 상징하는 ‘호모 코레아니쿠스’(진중권 저)의 표지에는 ‘호모 코레아니쿠스, 진화할 것인가? 퇴보할 것인가?’가 부제로 제시되고 있다. ‘지금 여기를 위한 역사 공부’를 부제로 한 ‘호모 히스토리쿠스(Homo historicus)’(오항녕 저)에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국민국가 중심의 ‘큰 역사’가 인간의 구체적 경험을 다룬 ‘작은 역사’보다 중요하다는 편견을 버리라는 조언도 담겨져 있다.

‘작심 3일(work) 하자’는 말과 함께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라는 부제를 담은 ‘호모 워커스(Homo workers)’(성남주 저)에는 직장이 아닌 직업이 필요한 100세 시대에 맞이하는 여러 단계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의 제시와 함께 휴대전화가 바꿔놓은 현대인의 자화상을 시간과 공간, 언어 그리고 몸과 정신 등의 인문학 지평에 그려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 편승한 코로나19 사태로 빠르게 변화해 나갈 미래 사회에서 특정 분야에 몰입하는 사람들을 상징하는 ‘~쿠스’가 담긴 신조어들은 앞으로 더 많이 생겨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호모에 담긴 신조어들을 막연하게 받아들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지혜롭다는 의미의 사피엔스라는 종명이 두 번 반복된 현대인의 학명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에서처럼 ‘지혜롭고 지혜롭게’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 할 때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이전과 다르게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미래 사회 환경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 자신의 장점 유전자 발휘를 통한 올바른 ‘선택’과 ‘변화’를 이끌어내는 지혜로운 ‘호모 사피엔스’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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