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詩] 아름다운 내력 - 배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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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내력

배한봉(1962 ~  )

부엌 구석 자루에 담긴 고구마

삶아 먹으려고 꺼내보니

삐죽삐죽 싹이 돋아 있다

어둠 속에서

몸으로 온몸으로 생명을 싹 틔운

침묵의 비명이

내 몸을 찌른다

이 한 뿌리가 내뻗은 줄기로

밭 한 고랑이 풍성하겠지

종자가 된 고구마

봄은 이렇게 준비하는 거라고

마음의 밥은 이런 거라고

한 수 뜨겁게 가르쳐준다

 

[시평]

부엌 한 구석지에 고구마를 자루에 담아 두었다. 어지간히 시간이 흐르고 자루를 열어보니, 삐죽삐죽 싹이 돋아나 있었다. 자루 속에 갇혀서, 깜깜한 어둠에 갇혀서 몸으로, 온몸으로 침묵의 비명을 지르며, 이렇듯 생명의 싹을 틔운 것이다. 그렇다 생명이란 이렇듯 대단하고 또 강인한 것이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도 어찌 보면, 자루 속 고구마 마냥 살아남기 위하여, 그래서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소진시키는 일인지도 모른다. 환경이 열악하면 열악한 데로, 그 열악함 속에서 생명의 싹을 틔우는 것이 바로 생명이고 또 생명의 경이로움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오늘 이렇듯 우리로 살아가는 것도 어쩌면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이겨낸 나름의 내력에 의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그 아득한 삶의 연대기로부터 내려오고 또 내려오는 내력을 지니고 오늘의 나로 이렇듯 살아간다. 깜깜한 어둠에 갇혀서 온몸으로 침묵의 비명을 지르며 생명의 싹을 틔우듯이, 그렇게, 그렇게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 모두의 모습, 참으로 아름다운 생명의 내력이 아닐 수 없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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