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코로나 재앙’ 속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거 실직하며 우리나라의 고용안전망 사각지대가 드러나기도 했고, 소수 집단에 대한 인권침해·차별 문제가 일어나 ‘차별금지법’에 대한 찬성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반면 ‘숨은 영웅’인 의료진들의 헌신과 희생이 부각되기도 했고, 교육계에선 온라인 수업 등을 통한 ‘미래 교육’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본지는 창간 11주년을 맞아 코로나 사태 속에 나타난 우리사회의 모습을 짚어봤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있다. ⓒ천지일보DB
선별진료소 의료진. ⓒ천지일보DB

 

지정병동서 근무했던 두 간호사의 생생한 이야기

“대한민국 간호사의 한명으로서 자부심 생기기도”

“확진자 임종 맞았던 순간, 잊을 수 없어 목메여”

[천지일보=이수정 기자] 국내에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어언 6개월이 훌쩍 지났다. 최근 확진자 수는 세자릿수 대로 올라가면서 전국적으로 코로나19 2차 대유행의 바람이 불고 있다.

실제 수도권의 경우 확진자를 치료할 병상이 모자라 급하게 병상을 마련하는 등 촉각을 다투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19가 국내에 판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사람은 바로 코로나19 감염병상 현장에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뛰고 있는 ‘의료진’들일 것이다.

본지는 당시 의료진들이 코로나19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고군부투했던 이야기를 들어봤다.

여기 올해 3년 차로 접어든 간호사 한 명이 있다. 당시 수도권에서 근무했던 A간호사는 간호 차팅 등 남은 일을 정리하던 도중 지난 2월 갑작스럽게 코로나19 확산지인 대구로 파견을 가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나보다 많은 경험과 능력을 가졌고, 자원하려는 선생님도 분명 많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지원하겠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할 이유가 없었다”며 당시 자신감을 내비쳤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내 걱정은 오직 3년 차 밖에 되지 않는, 메르스를 겪을 당시에도 하나도 모르는 간호 학생이었던 내가 과연 가도 되는 건가 하는 고민이었다”며 “수간호사 선생님과 간호 팀장님의 격려 속에서 나의 의료 파견은 확정됐고,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 감사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당시 근무하면서 자신이 해내기엔 너무 큰 책임을 맡긴 것 같은 ‘부담감’을 느꼈다고 언급하며 “우리 병원이 코로나 지정 병원이 된다고 확정된 이후 마음 편안한 적 없이 병원에 도움이 되기 위해 나름 애를 썼다”고 말했다.

[천지일보 천안=박주환 기자] 최근 수도권발 코로나19 확진자가 전국으로 재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3일 충남 천안시 동남구보건소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러 온 시민들이 의료진의 설명을 듣고 있다. ⓒ천지일보 2020.9.3
선별진료소 의료진. ⓒ천지일보 DB

이어 “그래도 ‘나보다 연차 높은 선생님이 오셨다면 더 병원에 도움이 됐을텐데’ ‘너무 부족하다’ ‘잘하고 있는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었다”고 말하며 당시 근무하면서 아쉬웠던 심정을 토로했다.

A씨는 코로나 전담병원에서 파견 근무를 마칠 때쯤 ‘의료진 덕분에 캠페인’을 통해 그동안 감염병상에서 힘들었던 기억이 모두 사라지고 동료들과 함께 했던 기억, 감사했던 기억만이 남았다고 했다.

그는 “어두운 상황이지만 긍정적인 면을 보고, 서로 힘을 합쳐서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활용하며 이 상황을 함께 의료진들과 이겨나갔다”며 “대한민국의 한 국민이자 간호사로서, 이 사태를 함께 헤쳐 나아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생기는 나날들이었다”고 덧붙였다.

A씨는 이번 파견을 통해 앞으로도 누군가 나서야만 하는 힘든 일, 어려운 일에 발 벗고 나설 수 있는 용기를 배웠고, 간호사로서 한층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그는 “코로나와의 싸움은 이제 ‘시작’”이라며 “싸움에서 지지않고 이겨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여기 코로나19 최전선의 현장에서 열심히 뛰는 한명의 숨겨진 ‘히로인’이 더 있다. 수도권에 위치한 코로나19 전담 병상에서 근무했던 B씨는 자신이 담당했던 환자들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고 입을 열었다.

B씨는 그중 특히 조현병을 앓고 있던 긴생머리의 중년 여성 환자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중년 여성 환자는 당시) 가족이 없었고 유일하게 오빠가 있었으나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고 있었다”며 “긴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닿아 있었고 머리를 감지 못했는지 수세미처럼 엉켜있었다”고 당시 환자의 모습을 묘사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서울 낮 최고기온이 34도를 웃돌며 무더운 날씨를 보인 11일 오후 서울 강서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방호복을 착용한 의료진들이 냉풍기로 더위를 식히고 있다. ⓒ천지일보 2020.6.11
폭염 속 방호복을 입고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는 의료진. ⓒ천지일보 DB

B씨는 보살펴주는 가족 없이 홀로 병마와 싸우는 중년 여성 환자에게 더욱 마음이 쓰여 머리를 감긴 후 긴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묶어 주며 친밀감을 쌓았다고 했다. 다행히 이 환자는 상태가 호전돼 음압병상에 입원한 지 50여일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B씨는 감염병동에서 근무할 때 경증에서 한순간 중증으로 급격히 악화되는 환자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의료진 모두가 불안증이 점점 심해져 갔다고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의료진은 포기하지 않고 환자의 증상에 맞게 간호하고 치료하기 위해 모든 것에 매진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담당 환자였던 95세 할머니의 임종 순간을 잊을 수 없다며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했다.

B씨는 “당시 할머니의 상태가 악화되기 전 간단한 대화는 됐지만, 부르면 겨우 눈을 뜨는 정도였고 난청으로 긴 대화는 어려움이 있었다”며 “매일 딸, 손자, 손녀가 편지를 보내왔다. 큰 소리로 읽어야 되는데 목이 메여 읽기가 힘들었다. ‘엄마 고마워, 사랑해. 편안하게 치료 잘 받고 퇴원하면 온천도 가고 꽃도 보러 가자’ ‘할머니 보고 싶어요. 꼭 만나요’ 가족들의 그리움이 가득한 편지를 읽다 보니 우리들의 얼굴은 땀, 눈물로 범벅이 돼 있었다”고 회상했다.

아울러 B씨는 파견 의료진뿐만 아니라 코로나 확진 환자들과 접촉하는 두려움을 이겨가며 협동하는 다른 부서들, 지정 병원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노고 없이는 병상이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며 그들의 헌신에 감사함을 표했다.

그는 “그래도 나의 이야기가 이 기간을 함께한 동료 의료진들에게는 공감을, 국민에게는 울림을 줄 수 있진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든다”고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서울, 경기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보건소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시민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8.20
선별진료소 의료진. ⓒ천지일보 DB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