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나발니 ‘노비촉’ 중독 발표… EU·美 러시아 비난

[천지일보=이솜 기자] 혼수상태로 독일 병원에 옮겨진 러시아의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가 신경작용제에 중독됐다는 독일 정부의 발표가 나오면서 세계적으로 파장이 커지고 있다.

2일(현지시간) BBC, AP통신 등에 따르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러시아 정부만 대답할 수 있고, 반드시 대답해야 하는 매우 심각한 질문이 있다”며 나발니가 ‘노비촉’이라는 신경작용제에 중독됐다는 증거가 있다고 밝혔다.

슈테픈 자이베르트 총리실 대변인은 성명에서 “EU(유럽연합)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에게도 이 검사 결과를 알리고 대응 방안을 협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날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도 이번 사건이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라며 “우리는 국제사회와 협력해 증거가 이끄는 모든 곳에서 러시아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날 트위터에 “터무니 없는 일”이라며 “러시아 정부는 이제 나발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해야 한다. 우리는 정의가 실현되도록 국제 파트너들과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발니는 지난달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으나 혼수상태에 빠졌다. 나발니 측은 그가 공항 카페에서 마신 차에 러시아 정부가 독극물을 넣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레오니드 볼코프 나발니 보좌관도 “2020년에 노비촉을 사용한 것은 범행 현장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서명을 남긴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독일 정부의 발표에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전면 부인하며 완전한 정보 교환을 요청했다. 마리아 자카로바 외무부 대변인은 이번 발표에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며 “어떤 사실도, 최소한의 정보도 없다”고 반박했다. 드미트리 폴리안스키 러시아 유엔 차석대사는 서방 국가들이 일제히 러시아를 비난한 데 대해 “오늘 ‘러시아 비난하기’는 어느 서방 국가라도 반드시 해야할 일”이라고 비꼬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러시아는 이미 6년 전 우크라이나에서 크림반도를 합병한 후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다. 만약 이번에 유럽 국가들과 미국이 공동대응의 일환으로 추가 제재를 가한다면, 러시아에 큰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나발니를 치료하고 있는 베를린 병원은 나발니의 상태가 호전되고 있으나 여전히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비촉은 1970~1980년대 소련군에 의해 개발된 치명적인 신경작용제로, 2018년 영국에서 러시아 출신의 이중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그의 딸도 이에 중독된 바 있다. 당시 영국 당국은 러시아의 군사 정보기관이 독살 음모를 꾸몄다고 밝혔다.

3일 로이터에 따르면 노비촉이란 이름은 러시아어로 ‘신참(newcomer)’을 의미한다. 더 잘 알려진 VX(신경독)와 사린가스와는 다른 성분으로, 김정남 암살에 사용된 VX보다 독성이 10배나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7년 제정된 화학 무기 협정에 따라 모든 화학 물질의 무기화가 금지됐다. 러시아 역시 협정 서명국이다. 이후 러시아 정부는 헤이그 소재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에 노비촉이나 그 성분을 신고한 적이 없다.

미국의 화학무기 전문가인 에이미 스미스슨은 노비촉이 합법적 상업산업에 보다 쉽게 감춰질 수 있도록 농약으로 만들어졌다고 추정했다.

킹스 칼리지 런던의 생화학 독성학 교수인 리처드 파슨스는 “군대에서 근무하지 않는 한 노비촉에 우연히 노출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내가 아는 한 러시아 군 외에는 어디에서도 노비촉을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