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코로나 재앙’ 속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거 실직하며 우리나라의 고용안전망 사각지대가 드러나기도 했고, 소수 집단에 대한 인권침해·차별 문제가 일어나 ‘차별금지법’에 대한 찬성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반면 ‘숨은 영웅’인 의료진들의 헌신과 희생이 부각되기도 했고, 교육계에선 온라인 수업 등을 통한 ‘미래 교육’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본지는 창간 11주년을 맞아 코로나 사태 속에 나타난 우리사회의 모습을 짚어봤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정의당 심상정 대표 등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차별금지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6.29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정의당 심상정 대표 등이 6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차별금지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6.29

코로나19 관련 성소수자·특정교인 차별·혐오 잇따라

인권위 ‘2020년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도조사’ 결과

‘나도 언제든 차별 대상이나 소수자가 될 수 있다’ 91%

‘평등권 보장을 위한 법률 제정에 찬성’ 88.5% 최고치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는 한두해 이어진 게 아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겪은 한국 사회에선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3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따르면 인권위는 지난 6월 24일 설문조사업체 리얼미터에 의뢰해 얻은 ‘2020년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도조사’에 대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를 계기로 누군가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나의 시선이나 행위가 결국은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거나 ‘나도 언제든 차별의 대상이나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91.1%(아주 많이 했다 19.8% 조금 했다 53.2% 지금 그런 생각이 든다 18.1%)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실제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우리 사회에선 차별과 혐오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지난 5월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 당시 성소수자들이 주로 방문하는 클럽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회적으로 상당한 차별·혐오 발언이 쏟아졌다.

자정 능력을 보여야 할 언론들도 일부는 여론에 편승해 자극적인 제목과 내용으로 성소수자들에 대한 비난을 키우기도 했다. 실제 성소수자들은 ‘아웃팅(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 성소수자임이 드러나는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공포에 떨었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이 지난 3월 2일 오후 경기 가평 평화연수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공식 입장을 밝히고 있다. ⓒ천지일보DB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이 지난 3월 2일 오후 경기 가평 평화연수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공식 입장을 밝히고 있다. ⓒ천지일보DB

지난 2~3월의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 대규모 집단감염의 경우에도 상황이 비슷했다. 신천지 교인들은 특정 교단에 소속됐다는 이유만으로 손가락질의 대상이 됐다. 신천지 측은 이번 사태로 인해 발생한 인권침해가 5200여건에 달한다는 자체 통계자료를 내놓기도 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많은 이들이 직장에서 해고됐고, 특히 가정에서의 갈등으로 교인 2명이 주택에서 추락해 숨지는 일도 있었다.

차별과 혐오의 시선은 특정 집단에게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개개인에게도 불쑥 드러났다. 정부가 방역을 위해 공개한 동선을 보고 확진자의 신원을 특정해 ‘불륜’이라고 비난하거나 ‘노래방 도우미’가 아니냔 가짜뉴스가 퍼지기도 했다.

이렇듯 누구나 차별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자 이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확산됐다. 인권위 조사에서 “우리 사회 차별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응답은 82%가 나왔고, 차별을 이대로 둔다면 ‘사회적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는 답이 72.4%, ‘범죄가 야기될 것’이라는 응답은 81.4%가 나왔다.

이에 따라 국민들이 차별을 ‘그 해소를 위해 적극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사회문제(93.3%)’로 인식하면서, 평등권 보장을 위한 법률 제정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문항에는 88.5%의 사람들이 동의했다. 이는 1년 전에 실시한 ‘혐오차별 국민인식조사’ 결과 72.9%보다 15%가량 증가한 것이다. 또 ‘정부 차원의 종합적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는 문항엔 87.2%, 국민인식 개선 교육·캠페인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엔 91.5%가 찬성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지난 6월 24일 설문조사업체 리얼미터에 의뢰해 얻은 ‘2020년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도조사’에 대한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에 따르면 평등권 보장을 위한 법률(차별금지법) 제정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문항에 88.5%의 사람들이 동의했다. (제공: 인권위) ⓒ천지일보 2020.9.2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지난 6월 24일 설문조사업체 리얼미터에 의뢰해 얻은 ‘2020년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도조사’에 대한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에 따르면 평등권 보장을 위한 법률(차별금지법) 제정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문항에 88.5%의 사람들이 동의했다. (제공: 인권위) ⓒ천지일보 2020.9.2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은 단순히 제도적인 보완만 말한 것이 아니라 평등권에 대한 높은 이해도 갖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은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한 존재(93.3%)’라든지, 성소수자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한 존재(73.6%)라는 응답도 매우 높게 나왔다.

이를 바탕으로 인권위는 지난 6월 26일 약칭을 ‘평등법’으로 바꾼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안’의 입법 추진에 나섰다.

인권위는 “인권위가 2006년 정부에게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 이후 수차례 법안이 발의됐으나 아직까지 입법이 이뤄지지 못했다”며 “평등의 원칙은 기본권 보장에 관한 우리 헌법의 핵심 원리”라고 밝혔다.

이어 “OECD 회원국 중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 이미 평등법이 존재한다”며 “우리나라는 다수 국제인권조약의 당사국으로서, 국제적으로 합의된 인권규범을 국내에 실현할 책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도 입법에 나섰다. 정의당 장혜원 의원을 대표로 정의당 의원 6명 모두와 여야 의원 4명 등 총 10명의 서명으로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대한민국 애국순찰팀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교대역 인근에서 열린 ‘제헌절 헌법수호 결의대회’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등을 촉구하며 피켓을 들고 있다. ⓒ천지일보 2020.7.17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대한민국 애국순찰팀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교대역 인근에서 열린 ‘제헌절 헌법수호 결의대회’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등을 촉구하며 피켓을 들고 있다. ⓒ천지일보 2020.7.17

이를 보면 차별금지법 또는 평등법이 당장이라도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반대 목소리는 여전히 만만치 않다. 아직도 보수 개신교계 등의 반대는 완강하다.

이에 동조하는 일부 시민들은 차별금지법이 통과할 경우 ‘동성애에 대해 반대만 하면 처벌 받는다’는 등의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퍼트리기도 한다. 지금도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 차별금지법을 검색하면 반대하는 이들의 게시물들을 잔뜩 볼 수 있다.

발의된 차별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일도 녹록치 않다. 인권위가 2006년 제의한 것을 시작으로 17대 국회부터 18, 19, 20대 국회까지 매번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반대 목소리에 부딪혀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어느 때보다 법 제정 찬성 여론이 높다지만, 결국 국회의원들이 반대 의견을 넘어 찬성표를 던질지가 관건이다.

이에 대해 정의당은 지난 6월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에 3당 공동 토론회 제안을 하는 등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법을 발의한 장 의원은 국회 여성·아동인권포럼과 차별금지법 의의를 설명하는 국제컨퍼런스도 여는 등 국회 여론전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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